<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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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2부 불타는 땅 비내리는 나가사키(33) 어깨를 감싸며 돌아보는 지상을 향해 아오키가 소리쳤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고 뭐하는 거냐!』 그의 채찍이 다시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지상은 몸을 피했다.등에 메고 있던 통이 덜렁거리며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할 때는 제대로 하란 말이다.조선놈 새끼들,일을 하는 건지마는 건지,흐느적 흐느적.』 땀닦으며 천장 한번 쳐다본 거 밖에 없는데 흐느적거린다니.지상이 이를 악물며 큰 키의 아오키를올려다 보았다.
뒤에 서 있던 윤씨가 그의 등을 떠밀며 앞으로 내밀었다.
『이 사람아.』 뒤따라오며 윤씨가 헐떡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그 사람이 누군데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면 어쩔 거야.』 『제가 뭘 어쨌게요? 땀닦느라 서있는데도 매질을 하려 들면…참을 일이 따로 있죠.』 『철없는 소리 말고,이 사람아 그러다가 큰일 나.바위에다 달걀 치기지 어림 반푼어치나 있는 이야긴가.그저 난 죽었소 하고 엎드려 있어야지.』 뒤쪽에서 또 비명소리가 들렸다.윤씨가 흘끗 뒤를 돌아보며 씨부렁거렸다.
『저런! 옘병에 땀도 못 낼 놈,조자룡이 헌 칼 쓰듯 그저 닥치는대로 휘두르는군.』 『온 지 며칠 됐다구 처음부터 매질인가 모르겠네요.』 『바로 그거 아니겠어?처음부터 기를 꺾자는 거겠지.열흘 길 하루도 아니 가서 뭐 어쩌구 할 게 아녀.우리도 두고 볼 수밖에.』 지게처럼 어깨에 걸 수 있는 짐통을 치켜올리며 윤씨가 옆에 와 섰다.딸만 셋이니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서 아들을 봐야 눈을 감을 거 아니냐고 우스개 반 진담 반으로 중얼거리곤 하던 사람이었다.
『옛말에도 있잖어.영감 밥은 누워서 먹고 아들밥은 앉아서 먹지만 딸의 밥은 서서 먹는다지 않는가.딸이란 게 다 그런거지.
셋이 아니라 서말이 있으면 뭘하겠나.』 그럴 때 톡 튀어나오며끼어드는 건 윤수였다.
『아 그러면 날 하나 주면 되겠구만.』 드문드믄 전등불이 걸린 터널 안을 걸어가면서 윤씨가 말했다.
『영계 울고 장다리꽃 피면…밤도 길어진다지 않던가.세월이나 가길 기다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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