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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구속부터 하는 수사관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해 우리나라 구속 미결수의 84%가 실형(實刑)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법무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구속됐던 13만4천9백40명중 실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2만1천8백25명(16.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간에 모두 석 방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억울한 구속」이나 「불필요한 구속」이 대부분이었던 셈이다.또 한편으로는 수사기관들이 인신구속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체의 자유가 모든 인권의 기본이고,구속이 신체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인신구속은 당사자에게 생계위협은 물론,명예의 파괴등 인간적으로 파멸에 가까운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더구나 단기간의 구속은 교 화효과 보다다른 범법자들과의 접촉기회 때문에 범죄성 조장등 엉뚱한 부작용이 뒤따르기도 한다.
헌법에 명시된 「형사피고인은 유죄로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무죄로 추정된다」는 규정도 바로 이때문이다.또 불구속 수사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제도적 장치가 일찍이 갖춰져 있는데도 인신구속 남용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수사기관이 구속을 피의자 조사와 자백을 받아내는 수사수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법문(法文)과 입으로는「불구속 수사 원칙」을 되뇌면서 막상 사건처리에서는 「구속」을수사의 기본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검.경찰의 고위간부들이 수사를 독려할 때마다 거리낌없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라」고 드러내놓고 지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가공권력에 인신구속권을 준 것은 현행범이나 범인의 도주.증거인멸의 방지등 최소한의 수사편의를 위한 것임을 좀더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모름지기 모든 수사기관은 국가공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기본적 인식을 갖춰야 할 것이다.그런 면에서 인신구속은 아무리신중을 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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