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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사태 1년, 中 펀드의 배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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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28면

지난달 31일. 긴박감이 묻어나는 한 장의 보고서가 날아왔다. 발신자는 피델리티자산운용이었다. 제목은 ‘시간의 힘’. 속절없이 떨어지는 주가에 겁먹어 당장 펀드를 깨고 자금을 회수했다간 훗날의 꿀단지 상승장을 놓친다는 논리였다. 술렁이는 가입자들을 ‘장기투자’란 화두로 진정시키려는 심산이었다. 환매 움직임이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마지노선은 '4000'

실제로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올 들어 중국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은 3597억원에 이른다. 다른 해외 펀드와 비교해도 새나간 돈이 많다. <그래픽 참조> 그럴 만도 한 게 중국 펀드의 주된 투자처인 홍콩 H지수는 올 들어 17% 떨어졌다. 고점이었던 지난해 10월 말의 20000선과 견주면 35% 추락했다. 상하이 증시도 10월 중순의 고점부터 석 달간 29% 빠졌다. 결국 투자자 돈이 1000억원 넘게 들어간 77개 중국 펀드의 3개월 성적표는 평균 -30%로 주저앉았다. 석 달간 수익을 거둔 펀드는 상하이 A증시에 투자하는 PCA투신의 ‘차이나 드래곤A셰어’뿐이었다.
 
나홀로 만리장성은 없다

숫자로 본 중국 증시의 주춧돌은 튼튼하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1%를 넘었다. 5년을 줄이어 10% 넘는 고속 성장을 뽐낸다. 그런데도 주가가 갑자기 휘청대는 이유는 무얼까. 현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고수들은 미국의 침체와 달리 중국은 독자적으로 번성한다는 ‘디커플링(decoupling) 기대’가 무너진 데서 뿌리를 찾았다.

송해성 삼성증권 상하이사무소장은 “서브프라임 파장이 빚은 대형 은행의 부실과 경기침체 우려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 중국에도 퍼졌다”고 전했다. 최영진 한화증권 상하이사무소장도 ‘금융주 약세’를 시장 불안의 주범으로 꼽았다. 금융·화학주는 상하이 증시의 양대 산맥으로 시가총액의 50%에 육박한다. 그러나 최근 3위 은행인 중국은행(BOC)까지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로 48억 달러의 손실을 보면서 금융주의 하락 뇌관에 불을 붙였다는 얘기다.

다만 베이징의 최종석 하나은행 중국은행장은 “주로 BOC가 외화자산 투자를 맡았기 때문에 나머지 금융사의 서브프라임 피해는 제한적으로 보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처음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부실예상 금액에 포함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이를 반영하는 통에 금융주의 신뢰 추락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도미노 지뢰밭

서브프라임 불씨만 잦아들면 만리장성 주가도 복원될까. 현지에선 고개를 젓는 전문가들이 많다. 중국 안방의 악재 또한 적지 않은 탓이다. 삼성증권 송 소장은 “따끈했던 경기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웠고 이젠 지나친 긴축 조치를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중국 중남부 폭설로 농작물·운송 인프라 피해가 커 올 1분기 물가상승률은 11년 만의 최대인 7%를 넘을 전망이다. 대출 창구지도와 금리·지급준비율 인상 등으로 돈줄을 조이면 주가엔 치명타다.

최종석 행장은 좀 더 넓게 봤다. “인플레와 위안화 평가절상이 가장 불안한 변수 중 하나”라며 “시장 전체엔 유동성이 넘쳐 나지만 저금리로 은행 예금이 줄어드는 것도 금융시장의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했다.

한화증권 최 소장은 ‘비유통주 문제’도 짚었다. 정부나 국영기관이 소유한 것으로 2005년부터 거래가 허용된 주식을 말한다. 그는 “그동안 매각 제한에 묶여 있던 주식들이 올해 속속 해금(解禁)되면서 물량 압박이 우려된다”고 했다. 올해 시장에 나올 비유통주는 1조6000억 위안(시가총액의 21%)에 이른다. 최 소장은 평안보험의 유상증자와 중국석탄에너지의 상장처럼 새롭게 쏟아지는 물량도 시장을 짓누른다고 했다.
 
‘포스트 올림픽’증후군

중국 증시의 또 다른 걱정은 올림픽 이후 문제다. 8월의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경제특수가 사라져 후유증을 크게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올림픽 뒤에 성장률 정체로 고생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현지 분위기는 낙관적이다. 얼마 전 중국의 나스닥인 ‘차스닥 시장’개설과 관련한 사업을 위해 한국을 찾았던 치디홀딩스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거품은 비누에서 나온 거품이다. 그냥 거품과 다르다.” 단단한 비누처럼 경제 체력이 뒷받침되는 만큼 쉽게 주가가 주저앉진 않는다는 논리였다. 올림픽 증후군은 막연한 기우라는 소리다.

삼성증권 송 소장도 “중국은 거대한 국토를 가졌다. 올림픽은 베이징을 무대로 한 이벤트에 불과하고 다른 지역의 투자와 경제활동이 올림픽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이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뒤에 부동산 값 하락을 겪었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사례다. 다만 미래에셋 이경영 대표는 “중국 관료들도 한국·일본의 올림픽 증후군 사례를 충분히 분석하고 있어 더욱 치밀하게 경제운용을 할 것이다. 금융당국엔 미국의 유력한 투자은행(IB) 출신도 많다”고 말했다.
 
4000을 주시하라

그렇다면 중국 증시의 바닥은 어디일까. 한화증권 최 소장은 상하이 지수 4000, 홍콩 H지수 11000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주가가 장기추세를 나타내는 ‘250일 이동평균선’을 깨고 내려갔기 때문에 다시 바닥을 확인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최 소장은 “4000과 11000 아래로 내려가면 대세 상승국면이 일단락되고 하락장으로 들어선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삼성증권 송 소장도 상하이 증시를 기준으로 4000을 얘기했다. 보수적인 현지 전문가들은 3800까지도 본다고 했다. 그는 “지수 4000 수준이면 기업이익에 비해 주가가 어떤지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이 22배로 낮아진다”며 “중국 증권사들은 이 정도를 저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의 PER은 25배다.

바닥 이후에 본격적인 회복이 온다면 무엇이 계기가 될까. 서브프라임의 진정과 미국 경제침체의 강도가 우선 순위에 꼽혔다. 중국만 독야청청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한화증권 최 소장은 “건전한 기업실적을 바탕으로 펀드 잔고·계좌 개설이 늘어나는 유동성 유입이 먼저 확인돼야 한다”고 했다. 최종석 행장은 “활황장이 다시 오려면 무엇보다 정부정책과 기업회계가 투명하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기업이익도 개선된다는 뜻이다. 삼성증권 송 소장은 “현지 증권사들은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끝나면 중국의 경제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으며 증시 향방도 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투자자 전술은

‘묻지마 환매’가 최선은 아니다. 일단 지난해 10월 고점에 중국 펀드에 들어간 투자자들에겐 ‘기다리라’는 주문이 많았다. 한화증권 최 소장은 “괴롭겠지만 반등을 기다리는 게 낫다. 여유자금이 있다면 지금처럼 주가가 싸졌을 때 일정기간마다 금액을 쪼개 추가로 넣는 전략도 권한다”고 했다.

바닥을 노려 새로 들어가려는 투자자들 역시 상반기 조정이 예상되므로 분할매수 방법을 쓰라는 조언이 나왔다. 중국을 비롯해 다른 신흥시장에 함께 투자하는 복합펀드도 대안이다. 1~2년 전에 투자를 시작해 이익을 냈다면 반등 때 일부를 환매해 주머니에 넣고, 조정 때마다 조금씩 재투자하거나 다른 신흥시장에 넣으라는 전법도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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