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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 실용정부 … ‘MB철학’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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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장으로 내정된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右>와 경호처장으로 내정된 김인종 전 2군사령관<中>이 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 기자회견장으로 가다 박영준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실장에 내정된 유우익 교수는 조선 말기 좌의정을 지낸 ‘낙동대감’ 유후조의 후손이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쓴 지리 수필집 『장소의 의미』의 저자이자, 비(非)서양인으론 처음으로 세계지리연합회 사무총장을 맡은 이름 있는 학자다.

총선을 코앞에 둔 정치의 계절에 국정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의 ‘넘버2’에 학자 출신인 그가 기용된 건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준 비서실 총괄팀장은 “유 내정자만큼 이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잘 아는 사람이 있느냐”며 “영국의 대처 총리도 비서실 사람들에게 국정 철학을 인식시킨 뒤 그들을 내각으로 보내 개혁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유 내정자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당선인의 자문교수이자 연설문 작성자였고, 말동무였다. 대선 때는 이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원(GSI) 원장으로 교수 인맥들을 엮는 중심이었다. 그는 이 당선인의 각종 구상에 철학적 숨결을 불어넣었다.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물길이 통하면 인심도 통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한강 하구에 인공섬을 만들어 평화경제지대로 꾸민다는 나들섬 구상도 기초했다.

‘실용’이 새 정부의 대표 컨셉트가 되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서울시장 퇴임사, 당 대선후보 수락연설 등 이 당선인의 중요한 연설문은 유 내정자가 이 당선인과 대화하며 초안을 잡았다. 평소 원만한 성품이지만 직언을 주저하지 않는 배포도 있다. 대선 막바지 이 당선인에게 재산 헌납을 집요하게 건의하고 발표문을 쓴 것도 그였다. 재산 헌납 발표 뒤 이 당선인의 친척 중 한 명이 “교수님! 그 재산은 열심히 일하고 아껴 모은 것이거든요”라며 농반 진반의 항의를 한 일도 있다.

이 당선인은 ‘실무’가 강점인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나 ‘정무 능력’이 강한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 대신 ‘철학’의 유 내정자를 낙점했다. 이명박 정부의 철학을 청와대 전체에 불어넣는 일을 유 내정자에게 맡기고 그 밑에 각 분야 전문가들로 수석비서관의 진용을 짜기 위한 구상이다. 한 측근은 “과거 실세 의원들의 각축장이던 대통령실장에 유 교수를 내정한 건 권부의 핵심보다 대기업 비서실처럼 일하는 청와대를 만들겠다는 당선인의 의지가 실려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유 내정자와의 일문일답.

-정무를 잘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오히려 고마운 얘기다. 조금 실수해도 용서해 줄 것 아닌가. 하지만 정무를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을 했고, 서울대 교무처장 시절 행정부도 많이 상대했다. 영 바보는 아니다.”

-이명박 청와대의 특색은.

“일은 기본적으로 내각이 하는 거다. 청와대가 권부라는 인식을 좀 지웠으면 한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절제된 처신을 해야 한다. 또 청와대에 꿈이 있으면 좋겠다.”  

서승욱 기자

◇낙동대감=조선 고종 때 재상을 지낸 유후조의 별칭. 유후조는 서애 유성룡의 3남인 유진의 7세 종손으로 영남인으로는 숙종 이후 270여 년 만에 재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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