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속병 깊이든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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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통합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한달간의 공방은 이제 끝났다.국회는15일 본회의를 열어 여야합의 내용을 담은 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일단 격돌을 피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해피엔딩이라 해서 다는 아니다.이번 파동에는 지나쳐버릴 수 없는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이런 문제들을 되짚어 보며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우선 짚고 넘어갈 문제가 정치에서 원칙과 상식의 실종현상이다. 국회의장과 부의장이 며칠동안 감금당한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의회는 불구가 된다.이같은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심의되는 법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의장.의원을「면담」한다며 감금하는 이익단체나 세력이 나타나면 정치인들은 과연 뭐라고 하겠는가.물론 이게 민주당만의 책임이란 뜻은 아니다.의회의 일에 경찰력이 개입하는 사례를 남긴 것도 꺼림칙하다.
정치와 국민간의 괴리도 더욱 심각해졌다.새삼스런 일도 아니지만 정당의 이해(利害)가 부딪치자 민생이 설자리는 사라졌다.한달내내 싸운끝에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은 한심할 정도다.기초단체분리공천을 두고『이거 하려고 그 난리를 벌였냐』 는 비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으로 토지실명제를 담은 부동산실명거래법이나 한은법등 국민생활을 위해 시급하고도 긴요한 법안들은 한달내내 뒷전이었다.현재 이런 계류안건은 1백26개나 된다.아마 국회파행기간중에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국민의 분노는 엄청났을 것이다.
정치는 나름의 고유한 기능이 있다.예컨대 상충되는 이해를 조정해 최대공약수를 끌어내는 국민통합기능등이다.그런 만큼 정치가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 것으로 봐야한다.다만 외상(外傷)이 아닌 속병이어서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 할 뿐인 것이다. 정치가 너무 희화(戱畵)가 됐다.「의원님」들의 활극은 코미디언들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다.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정치는 지금 잘못가고 있다.그럼에도 국민에게는 대안이 없다.다음 선거때도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놓고 선택해야 한다.우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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