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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장학생' 2년간 인재 관리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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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가 세계 일류로 도약하려면 여러분들의 창의력.모험심이 필요합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002년 2월 전국에서 뽑은 우수 인재 대통령상 수상자 172명을 청와대에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인재 한 명이 1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이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본지는 지난해 12월부터 두달여간 우수인재상 수상자 172명 중 당시 고3이었던 72명의 현주소를 찾아가 봤다.

2002년 7월 1일 경남 밀양. 2인승 경비행기가 하늘을 날았다. 공중을 선회하던 이 비행기는 한 줌의 재로 변한 강윤호(20.당시 밀양대 1)씨의 유해를 하늘에 뿌렸다.

"네가 그렇게 날고 싶어하던 하늘로 돌려보내마."

비행기를 몰던 박흥진(38)조종사는 혈육처럼 아끼던 제자 강씨를 떠나 보내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어려서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던 강씨는 1999년 밀성고 1학년 때 이 비행기를 직접 조립하고 몰아 최연소 '초경량 비행기 조종사'로 등극했다. 그 덕분에 2002년 국가가 미래를 이끌 인재에게 주는 제1회 우수인재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에 입학한 뒤 등록금을 벌러 수영장 건축 공사장에 나갔다 사고를 당했다. 수영장을 청소하다 감전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홍모(21.B대 유아교육2)씨 역시 우수인재상 수상자였다. 수상 덕분에 손에 쥔 장학금 300만원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 이상을 버틸 수 없었다.

휴학한 그는 어린이집에서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서야 지난해 9월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것이 2002년 지식기반 사회를 이끌 인재, 미래 한국을 지킬 버팀목이란 칭송을 받았던 '21세기 우수 인재상'수상자의 현주소다.

이들의 대부분은 대학 재학 중이지만 대학 입시의 벽을 넘지 못해 힘든 길을 걸어야 했던 학생들도 있다. 화려한 시상식 이후 인재로 커나가지 못한 채 좌절을 겪기도 했다.

정부의 인재관리가 부실한 데 따른 것이다. 취재 결과 정부는 상만 줬을 뿐 그 후엔 관심을 보이는 데 인색했다. 수상자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특히 가정환경이 어려운 수상자들은 별다른 도움없이 알아서 진로를 개척해야 했다.

탐사 및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인재상을 받은 朴모(21)씨는 수능성적이 안 좋아 학원 재수를 거쳐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내신성적이 좋지 않아 수시모집에서 탈락했다가 지방대에 합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학에 등록만 해놓고 재수해 다른 대학으로 옮긴'반수(半修)생'도 있다.

정부가 미국의 대통령 인재상(Presidential Scholars)과 유사한 상을 만들긴 했지만 이들에 대한 대우 및 관리는 미국과 크게 다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직속의 대통령장학생위원회가 수상 학생들에게 지원할 기금을 운영한다.

여기에서 수상자들을 위해 정부는 20만달러(2억4000만원), 기업 등 민간은 40만달러를 쓴다. 장학생의 명단과 실적을 게시해 놓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예 6월 중 한주를 정해 이들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국가적으로 개최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장학금 3백만원 지급이 고작이다. 정부 어느 부처 홈페이지에서도 이들의 명단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한 수상자는 "해마다 한국지도자 육성장학재단에서 연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지만'올테면 오라'는 식"이라며 "오죽했으면 수상자들끼리 모임을 만들겠느냐"고 반문했다.

강홍준 기자.함영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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