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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발 묶인 광저우역 … 37만 명 귀향 포기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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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중남부를 강타한 폭설로 주요 철도가 통제된 가운데 지난달 30일 남부 지방 일부 구간의 열차 운행이 재개됐다. 31일 1만여 명의 귀성객들이 진을 치고 있는 광둥성 광저우역에서 경찰이 기다리다 탈진한 환자를 옮기고 있다. 나머지 9만여 명은 인근 체육센터 등에 흩어져 귀향 교통편을 기다리고 있다. [광저우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성도 광저우(廣州)시 기차역 주위는 겨울 이슬비로 온통 젖어 있었다. 외부 온도는 영상 1도. 몸이 시린 날씨였다. 펑메이(彭美)는 나흘째 역 대합실 한 모퉁이에서 잠을 잤다.

광저우에서 100여㎞ 떨어진 둥관(東莞)의 한 전자회사 식당에서 일하는 그는 5년 만에 고향인 쓰촨(四川)성 난충(南充)시를 가는 길이었다. 두 달 전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으로 가는 열차는 10일째 폭설로 발이 묶여 있었다. 게다가 첫날 대합실 바닥에서 잠을 잤을 때는 남편 양복 주머니에 들어 있던 귀성 열차표 두 장을 도둑맞았다. 그는 “열차를 탈 때까지는 한 발짝도 대합실을 나갈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광저우 역에서 열차 운행을 기다리는 귀성객은 10만 명에 가깝다. 이날 대합실 안에서 밤을 지새운 인파는 1만여 명. 나머지는 모두 시 정부가 제공한 역 부근 체육센터 등에 흩어져 있다. 그나마 많이 준 숫자다. 이틀 전인 28일에는 40여만 명이 몰려 거대한 난민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장하이타오(張海濤) 역무원은 “20년 역 근무에 이런 인파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하루 세끼를 빵과 컵라면, 그리고 광저우 시 당국이 매일 제공한 10만여 개 도시락으로 버텼다. 이 덕분에 대합실 내 편의점에선 28일과 29일 각각 5000여 개의 컵라면이 팔리는 신기록을 세웠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화장실 부족이었다. 역 당국은 부근 역 광장에 임시 화장실을 설치하는 한편 역에서 500여m 떨어진 체육센터 등 10여 개 임시 대피소로 귀성객들을 분산 수용해 용변을 해결토록 했다.

이날 오후 6시에는 11개 철도노선이 재개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1분 만에 1000여 명이 몰리자 수십 명의 경찰이 나서 질서를 정리했다. 그러나 귀성객들이 열차를 서로 먼저 타려고 싸우는 바람에 6시30분 출발 예정이던 열차들은 대부분 8시에야 떠났다.

역사 밖에선 이슬비를 맞으며 100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고향행을 포기하고 환불받으려는 귀성객들이다. 지난 나흘 동안 47만2000여 명이 환불받았다는 게 역 관계자의 얘기다.

광저우=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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