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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8.김시作 寒林霽雪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리 눈덮인 산과 바위들,그리고 소나무 아래 초당이 있다.초당안에는 집주인으로 보이는 선비가 나룻배를 타고 그를 찾아오는 손님을 지켜본다.사립문 밖으로 한 사람의 나그네가 나가고 있고강심에 놓여 있는 다리 위에도 또 한 사람이 있다 .화가가 쓴제작연도를 밝힌 관기(款記),그리고 낙관이 좌측상단에 있다.족자,비단에 채색.1584년 작품.』 미국의 공업도시인 오하이오州 클리블랜드에 위치한 클리블랜드박물관 동양미술부 수장목록 인덱스에 기록된 양송당(養松堂)김시(金지.1524~1593)작『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에 대한 설명이다.
굳이 이 인덱스를 소개하는 까닭은 이렇다.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문화재 중 회화(불화를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다.그중 김시의 작품은 한국회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우리의 취재대상으로 선정됐다.그야말로 이역만리 클리블랜드 를 찾아간 것은 바로 이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서였다.박물관의 동양미술부책임자인 마이클 커닝햄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전시실에이 작품이 진열돼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이 박물관에는 한국실이따로 없었다.동양미술실에는 중국과 일본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그 속에 혹시나 하고 눈을 비비며 『한림제설도』를 찾아보았지만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그런 아쉬움 뒤에 커닝햄을 만나 먼저 접한 것이 위의 인덱스였다.수장고에서 커닝햄이 가지고 온『한림제설도』는 마 치 신주처럼 몇겹으로 싸여져 있었다.누에가실을 뽑듯 한겹 한겹 살며시 벗기자 두루마리 족자가 나왔다.가로 67.2㎝,세로 53㎝의 이 그림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일본에서 제작한 표구에 황금빛 원화가 의젓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보 면 산과 바위만이 있는 것으로 착각될 정도다.세월과 더불어 색감이 바랜 탓일까.
서울대 안휘준(安輝濬)교수가 저술한 『한국회화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일본에 있어야 한다.8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한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던 이 그림이 클리블랜드박물관으로 온 것은 87년이다.커닝햄은 그해 12월16일 일본의 야부 모토 소고로로부터 이 그림을 구입했다.이후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90년 10월부터 91년 1월중순까지 열린 「아시아의 가을」전 한차례뿐이었다.
커닝햄은 수준이 낮은 작품은 소장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자칫잘못하면 일반 관람객들에게 해당국가나 작가의 예술적 가치를 떨어뜨릴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그런 점에서 김시의 작품은 한국미술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뛰어난 가 치를 지닌다고평가했다.한국작가들이 지닌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이 작품에도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다고 했다.
김시는 조선조 중기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명종과 선조때 활약한삼절(三絶)의 한사람으로 이름을 날린 선비화가다.산수화를 비롯해 인물.우마(牛馬).영모(翎毛).초충(草蟲)등 여러 분야의 그림에 정통했다.그런 까닭에 그는 도화서 별제의 벼슬을 지냈다.그의 종손 김식과 김집은 물론 이흥효.이경윤 등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국내에 현전하는 작품으로는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자견로도(童子牽驢圖)』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安교수는 한마디로 김시의 작품에 대해 조선조 중기 화단을 예시하는화풍을 보여준 작가라고 했다.특히 김시는 안견파(安堅派)로 대표된 한국화의 정통성을 계승하면서 독자적 견해를 표방하고 있는점에서 주목을 끈다.
「만력갑신추 양송거사위 안사확 작 한림제설도(萬曆甲申秋 養松居士爲 安士確 作 寒林霽雪圖)」라는 관기에 의해 이 작품은 김시의 만년인 1584년에 그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安교수는『구도나 공간처리 등은 안견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사시팔경(四時八景)』의 초겨울 부분에 바탕을 두고 좀더 횡적으로 확산시킨느낌을 준다.그러나 오는쪽에 수평적 요소를 강하게 내고 먼산에큰 무게를 부여하여 그림 전체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은 안견의 그림과 주된 차이를 보여준다 』고 했다.
클리블랜드박물관이 한국예술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울에 세브란스병원을 세운 존 엘 세브란스의사 때문이다.1916년 이곳 출신인 세브란스의사가 도자기와 금속공예품을 다수 기증하면서한국예술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그로부터 70년 뒤 일본땅을 떠돌던 김시의 『한림제설도』가 이곳에 왔다.한국예술에 깊은 애정을 지닌 큐레이터 커닝햄의 집요한 노력이 낳은 결과라고고미술계는 지적한다.
[클리블랜드=崔濚周특파원] 자문위원 鄭良謨 국립박물관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관장 洪潤植 동국대교수 ▧ 다음회는 청자동남동녀형(靑瓷童男 童女形)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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