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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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연옥의 판단은 옳은 듯했다.
여성이 배우자를 고를 때 조건은 능력과 인간됨일 것이다.
젊은 원장은 가장 기초적인 이 조건에 우선 합당했다.
한의사로서의 능력도 상당한 것같았고,4대째 가업을 이어온 튼실한 배경도 믿음직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따스해 보였다.
차가운 남자처럼 곤란한 남편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요즘 여자아이 같지 않게 너무나 염담(恬淡)한 것은 아닌가 아쉬웠다.
지금까지 들어온 혼처중엔 세속적 의미에서 이보다 훨씬 좋은 조건도 적지 않았다.
아리영 시동생만해도 그렇다.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집안 어른들도 고루 지식층이다.현재는바닥의 「견습생」이지만 장차 큰 기업의 주역이 될 전망도 높다.길례 남편이 선뜻 맞선 보기를 권한데는 그런 계산이 있었음직도 했다.
『안데르센의 「엄지공주」이야기 아시죠?』 그런 저런 길례의 생각을 읽은듯,연옥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었다.
『엄지손 크기의 공주님이 자기처럼 생긴 작은 왕자님을 만나 결혼하는 얘기지?』 『엄지공주』는 안데르센의 대표작중 하나다.
어떤 남성이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배필인가를 캔 흥미로운 동화다. 엄지공주 둘레엔 여러가지 타입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힘깨나 있는 아비 덕에 사는 못난 개구리.
지식은 많으나 경박한 나비.
재산은 많으나 무식한 두더지.
자기 위주이면서 남의 말에 귀얇은 황금충.
성실하고 행동력은 있으나 화려하진 않은 제비.
그리고 영락없이 엄지공주처럼 생긴 왕자.
엄지공주는 맨먼저 나비를 사랑한다.
나비는 넓은 세상일을 많이 알고 있어 공주의 마음을 낚았다.
그러나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는 나비는 곧 떠나버린다.
황금충이 엄지공주를 강제로 자기 집에 데려간다.그러다 집안식구들의 공박을 받자 들판에 내다버리고 만다.
두더지 영감은 부자다.하지만 앞을 못보고 태양을 싫어하는 것이 큰 흠이다.
제비는 엄지공주를 짝사랑한다.과묵하고 헌신적이다.그는 공주를등에 태워 살기좋은 남쪽나라로 날아간다.
그곳은 꽃밭이었다.아름다운 꽃송이 속에 앉아있는 왕자를 사랑하게 된 공주는 결국 그와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
『남편감으론 제비가 더 좋았을텐데….』 길례의 지적에 연옥은동의했다.
『하지만 공주와 제비는 생김생김이 딴판이었잖아요.그래서 자기처럼 근본이 같고 똑같이 생긴 왕자를 고른 것이 아니겠어요?』사실,동질성(同質性)문제는 부부간의 근본적 화합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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