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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지지리 못사는 나라 … 내 탓 ? 네 탓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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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
윌리엄 이스터리 지음, 박수현 옮김
모티브 북, 416쪽, 2만3000원

가난한 나라는 왜 지속적으로 가난한가, 그리고 부자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경제학의 영원한 이슈다. 경제발전론, 개발경제학, 제3세계 경제학 등 다양한 ‘경제학’의 이름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숱하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크게 ‘내 탓’론과 ‘네 탓’론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근대경제학자들은 대개 ‘내 탓’론을 주창한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자신들이 못난 탓이라는 지적이다. 성장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이 없고 교육받은 숙련 노동력도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해법은 후진국들에게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로 모아진다. 2차 대전 후 미국과 세계은행 등이 중심이 돼 원조나 차관 등을 대량으로 제공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 다친 소말리아 어린이들이 모가디슈에 마련된 병원에서 치료받고있다. [AP=연합뉴스]

반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네 탓’론에 입각한다. 가난한 나라의 빈곤은 부자 나라에 약탈당하기 때문이다. 논리적 근거는 부등가 교환이다. 가난한 나라의 수출품은 제 값을 못 받고, 부자 나라에서 수입하는 것은 제 값 이상으로 지불한다. 따라서 해결책은 중심(부국)에 의한 주변(빈국)의 수탈과 같은 세계자본의 축적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이 책은 ‘내 탓’론에 무게를 두면서도 ‘네 탓’론도 섞어 후진국의 빈곤 원인을 설명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지은이는 16년간 세계은행에서 일한, 근대경제학자다. 가령 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본과 기술, 숙련노동력 등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후진국들의 부정부패와 모럴 해저드, 잘못된 정책 등도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수탈이나 착취 같은 용어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지은이는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은행이나 유엔 등의 국제기구와 미국 등 부자나라들의 잘못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네 탓’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이론에 입각했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이 되고 말았다. 지원은 필수적이지만 그 방식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원조와 차관을 통한 후진국의 자본 부족 해소와 교육 지원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 인구 증가의 억제와 외채 탕감이 ‘성장을 위한 만병통치약’ ‘가난에서 벗어나는 마법의 약’이라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에서 ‘성장’은 경제성장의 의미가 아니다. 기왕의 경제성장론과 경제학자들을 뜻한다. 지은이는 “경제성장이 구원의 열쇠”라고 주창하는 성장지상주의자다.
 
이 책은 가난한 나라가 성장하려면 ‘성장 유인(인센티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조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건 이런 인센티브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이란다. 가령 자본 원조가 많았지만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과 그런 유인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고등교육을 받아도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없는 한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래서 국제기구가 원조를 할 때 이런 유인을 많이 만드는 후진국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책은 너무 큰 주제를 다루면 대안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지만 후진국 경제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대체로 뜨겁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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