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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동차100년史>6.미국의 약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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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824년 4월 美의회는 종합조사법이라는 생소한 법을 가결했다.군인,특히 공병사관이 군적(軍籍)을 가진채 민간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텄다.군의 연구개발이 민간으로 확산되는데촉매역할을 했던 것.
19세기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의 국부(國富)를 쌓아올린 것은 이를 배경으로한 미싱.자전거.전기기계.자동차등으로대표되는 대량생산능력이었다.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고도(高度)한생산,경영시스템을 일컫는 「아메리칸 시스템」의 원류(源流)다.
19세기의 자동차왕국은 누가 뭐래도 프랑스였다.자동차가 미국의 부를 상징하게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뒤늦게 출발한 미국이 어떻게 왕국을 쌓아올리게 된 것인가.
19세기말 미국에도 자동차파이어니어들은 있었지만 자동차시제품은 몇년 늦었고 게다가 열악한 도로사정이 겹쳐 상업적인 생산은10년정도 유럽보다 늦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거에 유럽을 따라잡은 데는 자동차 대량생산기술을 발전시킨데 힘 입었다.여기에자동차의 주류를 가솔린엔진으로 삼은 것도 기폭제가 됐다.
통계에 따르면 1895년 미국에서는 유럽으로부터의 수입차를 포함해 약3천7백대의 자동차가 있었다.이중 2천9백대는 증기엔진 차였고 전기차가 5백대,가솔린차는 3백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가솔린엔진이 시동과 정비가 간단하고 엔진도 가벼워 비교적 적은 연료로 장거리를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산업정책으로 채택됐다.
발달된 공작기계기술이 이에 가세하고 20세기 들어 텍사스州에서 대유전(大油田)이 발견됐다.
석유산업에서 가솔린정제기술은 이미 19세기말에 유럽을 중심으로 확립돼 있던 터다.도로발달도 20세기초에 활발히 이뤄진다.
미국자동차산업은 크게 나눠 세가지 분야에서 시작됐다.첫번째는아메리카 모터스(AMC)와 같은 자전거 산업,두번째는 마차제조업이었다.
제너럴 모터스(GM)는 마차제조업에서 자동차산업으로 전향한 많은 중소자동차 메이커들이 합병돼 생긴 회사다.세번째로 헨리 포드,랜섬 올스와 같은 기술자개인으로 분류된다.
세기적 전환기에 미국에는 무수한 자동차회사들이 있었지만 미국자동차 산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포프.뷰익.포드등 3개사다. 당시 미싱업계는 불황을 이유로 자신들의 호환성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로 대거 옮기려 하고 있던 때 포프가 1877년 자전거시작품을 내놓아 일약 각광받게 됐다.1890년대에는 전미(全美)제1의 자전거회사로 군림하게 됐다.그후 포프는MIT출신 기술자들을 영입해 자동차산업에 참여하게 된다.그러나이 회사는 방향이 잘못된 전기자동차 참여,자전거 부진으로 1902년에 도산한다.보스턴출신 듀랜트는 GM창립자로 마차제조의 메카인 미시간州의 프린트에서 자랐다.그는 많은 마차제조특허를 갖고 있었는데 자동차 제조붐이 일던 1904년 경영난에 빠진 뷰익자동차를 매수하여 이 사업에 참여한다.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데이비드 뷰익이 자동차회사를 세운 것은 2년전이었다.듀랜트는 뷰익을 주체로 포드를 매수 하려 했으나 실패했다.1908년의 일이다.포드를 제외한채 올스모빌.캐딜락.오클랜드.폰티액등과 자동차부품회사들을 합병,GM이 탄생된다.크라이슬러는 이 GM에서분리돼 나온 회사다.
최후에 남은 것이 포드였다.미국 자동차산업사의 획을 긋는 대역사의 시작이 포드에서 시작된다.
東京=郭在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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