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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컴퓨터 달린 전차’ … 이세돌 천하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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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2008년의 첫발을 화려하게 내디딘 이세돌 9단이 2억원의 상금판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왼쪽은 시상자인 삼성화재 윤형모 부사장.

명승부였다. 첫판을 이세돌 9단이 이기자 둘째 판에서 박영훈 9단이 곧바로 반격했다. 그리하여 맞이한 24일의 최종전은 산이라도 밀어버릴 것 같은 승부 호흡과 기세가 치열하게 맞서며 마지막까지도 승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거듭했다. 박영훈은 힘과 전투에서 밀리지 않았고 종반전으로 접어들 때 형세는 오히려 백을 쥔 박영훈 9단이 앞서 있었다. ‘계산’에 관한 한 현 바둑계에서 이창호 9단에 필적하는 유일한 인물로 꼽히는 박영훈이기에 승리의 여신은 서서히 박영훈을 향해 미소짓는 듯 보였다.

그러나 초반부터 속기로 나가 시간을 충분히 비축해둔 이세돌은 이때부터 무서운 스퍼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백이 지닌 유일한 약점을 끈덕지게 압박하여 기어이 형세를 호전시켰다. 이때부터 반집의 피말리는 승부가 이어졌다.

소신산(小神算)이라 불리는 박영훈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반집승의 실마리를 풀고자 했으나 일찌감치 마지막 1분 초읽기에 몰린 것이 정교함을 떨어뜨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패착은 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나왔다. 265수에 끝나 계가를 하니 흑의 1집반 승. 이세돌 9단이 삼성화재배와 함께 2억원의 상금을 움켜쥐었다.

박영훈 9단을 2대1로 꺾고 2008년 들어 처음 열린 세계대회 우승컵을 차지했다. 바둑계는 이세돌 9단이 올해 절정을 이룰 것이고 자타가 인정하는 진정한 일인자로 올라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투의 화신으로 알려진 이세돌 9단이 계산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앞날은 더욱 밝아 보인다. 다음은 이세돌 9단과의 일문일답.

-결승전 내용과 우승 소감은.

“지난 연말 박영훈 9단에게 2연승 후 3연패로 우승컵을 내준 일이 있다. 이번에도 1국을 이기고 2국을 졌는데 사실 불안했다. 최종국은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중요한 한 수를 빠뜨려(하이라이트 참조) 위험해졌다. 힘든 승부였다. 연초의 큰 대회에서 우승해 너무 기쁘다.”

-올해는 4년마다 열리는 응씨배, 격년제의 도요타배와 춘란배까지 세계대회가 유난히 많이 열리는 해다.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결승에 올라가 있는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중국에 내준 응씨배도 되찾아오고 싶다.”(LG배는 한상훈 2단과 봄에 결승전을 치른다.)

-이세돌 9단은 이미 최강자로 통하고 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창호 9단과의 진검 승부가 남아 있다. 세계무대 결승전 같은 데서 꼭 한번 대결하고 싶다.”

-고향인 비금도에서 떠난 지 18년이다.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나.(이세돌 9단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를 7세 때 떠나 서울로 와 권갑룡도장에서 수업했고 12세 때 프로가 됐다.)

“(웃음)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배고프다. 이제 시작이라면 좀 이상하겠지만 아직은 멀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이세돌, 상대 약점 끈질기게 공략 … 위기 벗어나 역전

◇하이라이트=박영훈 9단의 백4는 승부수. 이세돌 9단은 처음엔 A로 감아버릴 결심이었으나 ‘가슴이 떨려’ 5로 물러선다. 형세가 좋았던 것도 후퇴의 이유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백8,10을 당하고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만다. B의 곳 선수를 해두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게다가 대마의 안전이 불안하여 13,15로 작은 곳을 두어야 했고 결국 최대의 곳인 16을 내주고 말았다. 이래서는 백 우세의 국면.

그러나 이때부터 이세돌은 C와 D의 삭감과 E의 약점에 대한 노림을 끈덕지게 연결시켜 다시 바둑을 역전시킨다. 마지막은 장기전에 능한 이창호 바둑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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