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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이것이과제다>6.법조인 교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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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법연수원은 법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다방면의 지식을 배우고인격을 함양하는 법조인 예비학교가 아니라 또 다른 판.검사 선발학교입니다.
주입식 교육방식에다 내용 역시 판.검사업무에 편중돼 있어 시대변화에 맞는 다양한 진로개척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지난 16일 서울서초구서초동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金모(29)씨가 밝힌 수료 소감은 사법연수원 교육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2년간의 연수원 성적이 바로 판.검사 임용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법조인에게 필요한 인성이나 소양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92년 연수원을 수료한 21기 2백37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장래 진로를 무시한 획일적인 연수방법에 불만을 토로한 사람이 65%인 1백54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수생들의 최대 관심인 성적 배점 역시 총점 5백80점중 민.형사재판및 검찰.변호사 실무등이 4백50점이나 된다.
반면 법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인성에 대한 배점은 고작 10점에 불과하고,그나마 대부분 9점이상을 받는 형식적인 평가다.연수기간중 인격함양이란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다.
이처럼 허술한 연수원 교육과정을 거쳐 판.검사로 임용되고나면재교육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물론 판사의 경우 초임법관 연수와 경력에 따라 받는 세미나 중심의 중견법관 연수.중진법관연수등이 있고,검사들 역시 4주정도인 신임검사 교육과 강력.보건.공안.경제등에 대한 2~3주 코스의 교육이 있다.그러나 예산 부족에다 산적한 업무.짧은 기간등 때문에 수박 겉하기식일 수밖에 없다.
매년 30~40명(판사 20여명.검사 15명선)의 판.검사가1년간의 해외연수를 떠나지만 대부분 어학연수 수준에 머무를뿐 실제 재판.수사업무나 전문화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재조(在曹)의 이같은 상황은 민간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가 된다. 국내 대표적인 로펌(변호사회사)인 金&張법률사무소는 76년께부터 생활비.학비등 유학비용 일체를 부담,입사후 4년이 된변호사에게 예외없이 1년6개월~2년정도 유학을 보내 각 방면에대한 전문지식을 습득토록 해 왔다.
그 결과 이제는 이 회사 소속 변호사 80여명중 63%인 50명이 미국.영국.독일등에서 공부한 각 분야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각종 사건과 송사(訟事)의 카운터 파트너인 변호사들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는데도 정작 인신구속과 재산권 분쟁등에 대한 칼자루를 쥔 판.검사들은 사건처리에만 쫓기고 있다.
서울고법 모 판사의 말처럼 각자 알아서 없는 시간을 쪼개 특정분야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헌법관련 소송등 각종 신종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판사가 적지 않고,검찰 역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의료사고나 컴퓨터범죄.세금관련사건등은 수사를 기피하거나 애를 먹는경우가 많다.실제로 검찰이 각종 경제.금융사범등 의 수사때면 복잡한 세무처리및 은행계좌 추적을 위해 국세청.은행감독원 직원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서울지검에는 아예 세금관련 수사를 위해 국세청 직원 2명이 1년기한의 파견형식으로 근무하고 있다.
86년7월 멀쩡한 사람에게 「잠재성결핵」환자라는 허위진단을 내린 혐의(사기)로 기소됐다가 무려 8년7개월만인 지난 15일서울형사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식품 회장 정재원(鄭在遠.78)씨 사건도 따지고 보면 판.검사들의 전문교■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사람 해외연수비용이면 국내에서 5명이상을 교육시킬 수 있다』면서 『해외연수 숫자를 줄이더라도 검사들을 국세청이나 은행감독원 같은 곳에 보내 실무교육을받도록 하는 것도 전문화를 위한 한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사법연수원의 K모교수는 『올해부터 연수원생들의 인격함양을 위해 자원봉사연수제도를 도입하고,통상실무.지적소유권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과목 개설과 함께 교재 편찬등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대수술이 필요 하다』고 지적했다. 한양대법대 양건(梁建)교수는 『사회가 복잡.다양해지면서 새로운 범죄와 사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연구가 필요하다. 대학원에 판.검사들이 수강할 수 있는 과정을 개설,분야별 전문가 양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孫庸態기자〉 ◇도움말 주신분▲賈在桓 사법연수원장▲李相京 서울고법부장판사▲梁建 한양대법대교수▲柳重遠 변호사▲黃昌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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