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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총체적으로 '왕따' 해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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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왕따 동영상 파문과 관련한 학교의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왕따'사건이 발생했다는 자책감에 상당히 괴로워했다는 가족과 학교 관계자의 말로 미뤄 교장은 모든 책임을 떠안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학교폭력이 학교 교장만의 책임인가.

학교 폭력은 전국의 모든 초.중.고 학생들 사이에서 일종의 놀이처럼 죄의식 없이 집단적으로 이뤄질 정도로 만연해 있다. 조폭 세계를 묘사한 영화 등 폭력 영상물이 범람하고, 곳곳에서 조폭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청소년들은 폭력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폭력행사를 남자답고 멋있다고 생각해 흉내내는 분위기까지 생겨나고 있다.

연전에도 부산의 한 고교 1학년 교실에서 한 학생이 수업 중인 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급우를 살해한 이 학생은 인터넷 등을 통해 영화 '친구'를 40회나 보았고 폭력배들이 쓰는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조폭들은 밤거리 유흥가뿐 아니라 정치판과 경제현장을 누비면서 정.재계 인사들과 '형님' '동생'의 음습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청소년들이 폭력을 폭력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세태로 보면서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사회가 여러 가지 욕망을 무정부적으로 방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되면 사람들은 사회의 법과의 동일시를 통해 문화세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억압했던 공격적 긴장을 쉽게 완화한다. 특히 청소년에게는 이러한 행동이 영웅적이고 감정적으로까지 비춰진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으나 특정한 선(善)만을 강조하거나 도덕성회복운동 같은 것으로서는 효과가 없다.

이러한 사회적 긴장이 느슨해져 있는 때일수록 사회통합의 임무를 맡고 있는 모든 기관의 전략적 과잉 긴장화가 필요하다. 경찰.검찰의 수사기관은 왕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교육행정기관은 왕따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교육기관, 즉 학교에서 학교인지 뒷골목인지 모르는 심각한 교실 내의 폭력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수업 시간에 귀 기울이고 진지하게 임하는 학생들의 수가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현실에서 교사들의 목은 점점 쉬어가고, 성정은 메말라만 가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아무리 악조건이고 인사상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내 폭력을 방관하고 덮어두려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또한 내 자식은 괜찮겠지 하는 부모의 안이한 자세도 문제다. 학생들은 최근 들어 1가족 1자녀 형태의 가족이 증가하면서 지나치게 과보호 속에서 자라거나, 일부 청소년들은 방치된 환경에서 양육됨으로써 또래들과 협상하며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그들은 사회현상에 대한 판단력을 제대로 학습하지도 못한 채 텔레비전을 비롯한 언론에 노출되고, 인터넷에 중독된다.

이번 왕따 사건에 대한 신문이나 잡지.방송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한마디로 매우 호들갑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확한 사건의 실태와 근본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진단 없이 선정적인 타이틀과 동영상으로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만을 부각하면서 구체적 대안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마음 약한 교장선생님에게 커다란 심리적 부담만을 준 것은 아닐까.

이제 왕따 문제는 학교.교육부.경찰.검찰.언론.부모들이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우리들의 문제로 돼 버렸다. 그 공격성과 공격성에 대한 책임이 우리 사회 전체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김병준 변호사·한국법심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