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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봉하마을의 세금 빼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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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귀향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은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21일 김해시가 공개한 봉하마을 일원 관광자원 개발사업을 보면 마을은 잔디로 뒤덮여 흙을 밟기가 힘든 생태마을로, 뒷산인 봉화산은 웰빙숲으로, 마을 앞 화포천은 습지생태 체험장으로 개발된다.

 이 사업에는 앞으로 2∼3년 동안 국민 세금 165억원이 들어간다. 봉하마을에 75억원(국비 1억원, 도비 8억9000만원, 시비 25억6000만원), 봉화산 웰빙숲 개발에 30억원(국비 15억원, 도비 7억5000만원, 시비 7억5000만원), 화포천 생태체험시설에 60억원(국비 30억원, 도비 15억원, 시비 15억원)이 투입된다.

 봉하마을 리모델링은 지난해 3월 19일 김해시의회에서 봉하마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제경록 의원이 자유발언을 통해 “대통령 고향이라는 값진 브랜드를 상품화해 지역을 발전시키자”고 주장한 게 발단이었다. 처음엔 정부 내 해당 부서에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김해시도 2∼3년 전부터 이 사업을 위해 예산 확보를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퇴임 뒤 귀향하면 숲 가꾸기 사업과 습지 생태계 보전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자 ‘추진’ 쪽으로 신속히 가닥이 잡혀갔다. 예산 조달도 중앙 정부와 광역(경남도) 및 기초자치단체(김해시)가 ‘사이좋게’ 나눴다. 결국 노 대통령은 퇴임 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김해시는 거액의 예산을 따내 지역개발에 쓸 수 있다는 서로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세금 빼먹기로 이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새해 들어 봉하마을 개발에 35억5000만원, 화포천 생태체험장에는 12억원이 확보돼 노 대통령 귀향에 맞추어 본격적인 사업이 벌어진다. 대통령 고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자치단체가 단장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정부 관련 부서와 자치단체가 나서서 지나친 예산을 쏟아붓는 정책 결정 과정은 온당치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고향(거제)의 보로꾸(블록) 한 장도 건들지 말라”고 지시했다. 국민 세금으로 그의 고향을 리모델링한다고 법석을 떨지 않았다는 점은 되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김상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