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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체계 대변혁 의미와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정부조직 개편에 버금가는 「금융체계 개편」이 정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착수됐다.
20일 발표된 정부안은 그간 「한은(韓銀)독립」을 놓고 벌어진 논란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통화신용 정책및 금융 감독 체계」의 「헤쳐 모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물밑 작업 결과를 임시국회의 개회에 맞춰 표출시킨 정부는 21일의 국무회의를 거쳐 속전속결로 법안을 처리할 예정으로,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정부조직개편에 이은 또 하나의 YS식 제도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간 다분히 정치적인 이슈로 다루어져 온 한은 독립 문제의 돌파구를 정부가 「3개 감독원의 통폐합」으로 찾았다는 것이 이번 정부안의 골자다.
통화신용정책을 한은에 넘기되 은행감독원은 분리해야겠다는 것이정부의 생각이었는데,이에 대해 경실련의 경제학자 1천명 서명 건의등 반대 의견이 거세자 「감독원 통폐합」에다 은행감독원 분리여부 논란도 「통폐합」시켜 버린 셈이다.
정부가 새로 그린 금융체계도는 단순히 자리가 많이 없어진다든가 수많은 사람들의 신분 이동이 예상된다든가 하는 물리적인 변화를 넘어 금융의 흐름 전반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지는 화학적인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은은 자칫하면 통화신용정책의 「책임」만을 떠 맡는 집행기관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그러고도 과연 순수히독립적인 통화신용정책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인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그간 누구나 강조해왔듯 중앙은행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기 보다 「운영」의 문제라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중앙은행도 광의(廣義)의 정부이고 아무리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라도 정부 정책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끌고 갈 수는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매우 예민한 부분이 될 수 밖에 없다.
20일 재경원이 발표한 안(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사실상초유(初有)의 중앙은행 제도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도 앞으로 경제정책추진과 금융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이다.
정부안의 특징은 현재 재경원 장관의 금통위 의장 겸직을 폐지하고 금통위 의장이 한은 총재를 겸하도록 하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화금융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주체는 정부였는데 이 일을 사실상 한은으로 넘겨 통화 정책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금통위 의장이 한은 총재를 겸하느냐,총재가 의장을 겸하느냐는문제에 대해 정부는 금통위가 한은을 지시.감독하는 기관이므로 의장이 총재를 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금통위 의결 사항에 대한 재경원장관의 재의(再議)요구권은 지금과 같이 허용되고 재경원 차관이 금통위원 9명중 한명으로 참여한다는 점을 들어 한은측에서는 정부의 간섭이 여전할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정부안은 또 금융감독원을 신설,은행에 대한 감독권도 정부로 환원시키는 것으로 돼 있다.
당사자인 한은이 가장 펄쩍 뛰고 있는 대목이다.
금융기관 감독은 통화관리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손발」이며 따라서 통화관리의 중립성을 높이겠다면서 이 손발을 잘라 버리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것이 한은의 주장이다. 다른 것을 다 얻어도 금융기관 감독기능을 잃으면 소용없다는것이 한은의 정서라고 볼 때 이 문제는 앞으로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 확실하다.
한은법 개정 문제의 「아킬레스 건(腱)」이 바로 이 대목인 셈이다. 한편 정부는 이날 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개편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유달리 강조함으로써 개정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결론날 것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정부.여당.야당.한은은 물론 경실련등 시민단체와 학계등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하나로 정리되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은법 역시 제도보다는 운영이 핵심이다.
예컨대 제도적으로 중앙은행의 중립성이 보장된 나라의 물가가 그렇지 않은 나라 보다 안정됐다는 일관된 증거도 없다.
결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통화가치의 안정」이 가장 바라는 바이며 정부와 한은은 합심하여 제도 운영의 묘를 살려가야 할 것이다. 沈相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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