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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경쟁 상대는 홍콩… 국제화 아직 부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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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12면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왼쪽)이 17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 문화혁신 정책을 놓고 대담하고 있다. 두 사람은 서울이 매력적인 도시가 되어야 경쟁력을 갖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강정현 기자]

사회=오 시장과 기 소르망 모두 도시, 특히 ‘수위(首位)도시’(한 국가나 지역을 대표하는 중심도시)의 경쟁력을 문화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도시 경쟁력에서 문화가 왜 중요한가.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 - 오세훈 서울시장 특별대담

기 소르망=수위도시는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경제발전의 첫 번째 단계는 노동과 자본의 집약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경제발전의 제2단계에 있는 국가·도시는 혁신이 경제발전의 엔진이 된다. 혁신은 창의적인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이 때문에 한국의 수도 서울은 소프트웨어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 인력을 끌어 모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야만 다음 경제발전을 위한 엔진을 만들 수 있다.

오세훈 시장=도시 경쟁력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매력’이다. 도시가 매력을 가져야 사람과 돈이 들어오고, 정보와 창의적인 상상력도 들어온다. 매력은 문화자본에서 나온다. 서울시가 ‘창의 문화도시’를 부르짖는 이유다.

사회=도시문화의 측면에서 서울의 강점·약점은 무엇인가.

소르망=우선 국립중앙박물관이 재개관하면서 한국의 문명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또 서울의 많은 갤러리가 과거와 현대를 잇는 젊은 예술가들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서울의 큰 매력이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호 작용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활발한 의견교환을 통해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밑바탕이다. 하지만 서울은 국제화가 부족하고, 세계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훌륭한) 중앙박물관은 외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또 서울은 아직까지 폐쇄적인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다.

오=한국이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잘 드러내고 포장해 국제사회에 내보이는 데 미숙했고 게을렀다. 풍부한 문화자산을 외부에 알리고, 대한민국과 서울을 문화국가·문화도시로서의 브랜드로 만들어내야 한다.

사회=서울이 아직 국제화가 덜 됐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뼈아픈 얘기다. 문화도시가 되려면 고유문화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문화도 중요하다. 우리는 자라면서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받았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한다. 뉴욕·런던·파리가 세계적 도시인 이유는 외국인들이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서울은 외국인들이 와서 생활 터전을 잡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서울시는 다음달 ‘글로벌 센터’를 열어 국제화 수준을 높이는 데 힘쓸 것이다. 외국인의 비즈니스·거주·관광에 불편함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소르망=한국인들이 외국인을 편하게 대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싱가포르·홍콩처럼 서울에 외국대학의 캠퍼스를 유치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도시 외교’도 강화해야 한다. 전시회를 외국에서 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문화외교는 국가 차원에서보다는 관료주의가 덜한 도시 차원에서 하는 게 효율적이다. 예술가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 한국의 최고 대사는 백남준이었다. 이런 예술가를 국내외에서 활동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것이 국제적인 문화경쟁력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다.

사회=서울의 문화 수준을 경쟁도시와 비교해 본다면.

소르망=아시아에서는 서울과 홍콩이 경쟁 상대다. 도쿄나 오사카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볼거리가 부족하고 물가가 비싸 전시회나 박람회를 열기 어렵다. 싱가포르는 규모가 작은 데다,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아 표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문화발전에 제약이 있다. 상하이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보면 뉴욕·파리·런던·베를린 등이 문화도시 경쟁을 하고 있고, 남미에서는 상파울루를 들 수 있다.

오=소르망이 서울의 잠재력에 높은 점수를 줬지만, 스스로는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도시가 되기 위한 역량이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지 않다. 서울시는 되도록 많은 시민, 특히 주머니가 얇은 서민들도 고급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고급 공연을 싼값에 보여주는 ‘천원의 행복’, 생활 속에 미술을 접하게 하는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 지하철에서 하고 있는 ‘시가 흐르는 서울 프로젝트’ 등이 그 예다.

사회=서울만의 차별화된 문화발전 전략이 있다면.

소르망=‘노출’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외국인 방문객이나 거주자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라는 것이다. 이들이 서울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만의 독특한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패션쇼는 뉴욕이나 파리에서도 열리고, 영화제는 베를린이나 칸·베니스에서도 열리기 때문에 똑같은 패션쇼나 영화제를 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남들이 하지 않는 틈새 분야를 찾아서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국제적인 이벤트를 만들어내야 한다.

시장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 즉 일종의 자문단을 만들 수도 있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브라질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10∼12명의 그룹이 창의 문화에 대해 조언하는 것이다. 재외 한국동포로 자문단을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차별화된 문화정책은 서울의 독특한 문화·역사적인 자산을 토대로 추진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한강과 남산이다. 서울시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도시의 얼굴을 바꿔나가는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U(유비쿼터스)-투어 시스템’을 제공한다. 관광객들은 공항에서 받은 단말기를 통해 서울의 역사·문화 자산을 해당국 언어로 소개받고, 호텔이나 레스토랑 예약,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의 발전된 정보기술(IT)과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을 융합된 형태로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드라마·연극·무용 등 각 방면의 문화예술인들이 싼값에 이용할 수 있는 ‘문화창작소’를 마련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사회=이런 도시문화가 경제와 어떻게 연결되나.

소르망=간단히 말하면 ‘문화=산업’이다. 도시가 문화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면 관광 및 컨벤션 산업으로 이어진다. 문화적인 이미지는 수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독일 차, 프랑스 향수 등은 그 나라의 이미지와 결합돼 있다. 예전에는 한국 상품이 싸기 때문에 샀지만, 지금은 삼성 같은 기업의 상품이 주는 정교한 이미지 때문에 산다.

오=취임과 함께 ‘문화는 경제다’를 외친 지 1년 반이 됐다. 이제 서울시가 나서서 ‘데카르트 마케팅’(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마케팅. ‘데카르트’는 ‘테크놀로지’와 ‘아트’의 합성어)을 하려고 한다. 뛰어난 원천기술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문화로 상징되는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등의 무형자산을 들고 고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 작업은 중앙정부가 하는 것보다 서울시가 수행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사회=이현상 차장, 정리=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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