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한 보건의료발전계획안은 그동안 제기됐던 각종 문제점을 총망라해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병원들의 역할 분담에서 의료시장 개방 대책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현안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부실병원 인수, 공공의료 확충(5조원) 등 이번 계획에 필요한 9조원의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시행 과정에서 병원 간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지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이번 계획안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의료기관별 역할 분담의 윤곽을 그렸다는 점이다. 지금은 동네의원과 중소병원, 중소병원과 큰 병원의 영역이 겹쳐 있다. 그래서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감기환자가 몰리는 데 대해 제한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외래 진료 건수는 6억1913만여건이다. 이 중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은 3653만여건으로 5.9%를 차지한다. 이들이 쓴 돈은 1조9837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9.7%, 전체 외래진료비의 13.2%에 해당된다.
감기환자 등이 큰 병원에 가지 못하도록 환자 부담을 올림으로써 이 돈을 절약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해 보험 재정을 중증 환자들한테 돌리고 큰 병원들이 중환자 진료나 질병 연구, 의사 교육 등의 역할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대형병원들의 진료 수가(酬價.의료행위의 가격)가 원가를 밑도는 상황에서 반발이 따를 전망이다. 서울 모 대학병원장은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의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 해 큰 병원을 찾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네의원들이 선진국처럼 수술을 하지 않고 질병 예방이나 진단 등의 1차 의료기능을 하도록 병상을 제한하려는 것도 방향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1월 말 현재 동네의원들이 전체 병상의 33.7%나 보유하고 있어 저항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동네의원 병상을 줄이려면 대학병원이 외래환자를 못 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계획대로 할 경우 동네의원은 질병 치료보다는 예방.상담 등을 통해 지역주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을 주로 할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진국처럼 자연스레 주치의 비슷한 제도가 생겨 가벼운 병으로 큰 병원에 갈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덜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개방에 대비해 정신과 등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자본 조달이 쉬워져 의료 기관의 수준이 높아지고 서비스도 한결 나아질 전망이다. 대신 경쟁력 없는 병원들은 도태될 가능성이 커진다.
◇용어해설=동네의원은 29병상 이하, 30~99병상은 병원, 100병상 이상이면서 필수진료과목 7개 이상을 갖추면 종합병원이 된다. 대학병원은 의과대학에 속해 있는 대형 병원을 말하며 42개가 있다.
신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