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아래 '멋대로 걸'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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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권칠인
주연:이미숙·김민희·안소희
등급:15세 관람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인생의 새로운 계단을 갈망하는 동시에 주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일이든 결혼이든 아님 새로운 사랑이든 뭔가 새로운 단계가 필요한데, 막상 한걸음을 더 내딛자니 망설여지는 여자들이다.

살아본 사람들은 짐작하는 대로, 설령 그 계단을 오른들 종착점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접근방식도 그렇다. 서로 다른 세대의 세 여자가 겪는 갈망과 주저의 과정을 경쾌하고 공감 가게 그려내는 풍속화일 뿐, 완결된 결론을 내리려 하지는 않는다.

 27살 시나리오 작가 아미(김민희)는 1년 남짓 허름한 여관방을 전전하며 신인감독과 시나리오를 다듬는 중이다. 도무지 언제쯤 영화화가 결정될지 짐작이 가지 않는 지루한 작업이다. 밴드활동을 하는 남자친구(흥수)와 만나도 답답한 처지는 마찬가지. 설상가상으로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아미가 얹혀 사는 언니 영미(이미숙)는 40대 초반의 싱글맘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친구의 부탁으로 연극의 무대미술을 맡게 되는데, 한참 연하의 젊은 극단원 경수(윤희석)가 겁 없이 접근해 온다.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영미는 속된 말로 ‘내일부터 생까자(모른 척하자)’며 그야말로 ‘하룻밤’으로 넘기려 한다. 하지만 경수는 관심을 접지 않고, 영미도 자꾸 경수에 신경이 쓰인다.

 영미의 딸 강애(안소희)는 호기심 많고 새침한 고교생이다.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의 부추김으로 남자친구 호재(김범)와 스킨십을 해보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호재와의 관계는 동성친구나 다름없는 분위기고, 강애는 자신의 관심이 전혀 다른 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세 여자를 내세웠으되, 이야기의 중심은 아무래도 아미다. 아미는 맞선 상대였던 회계사(김성수)의 썰렁한 유머감각을 비웃다가 뜻하지 않은 술주정을 계기로 그와 본격적인 데이트를 하게 된다. 술주정 장면을 비롯, 김민희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다. 뭔가 변화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본래의 자기를 내버리고 싶지는 않은 젊은 여성의 갈등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미숙의 연기는 안정적이다. 자칫 과장되게 보일 수 있는 영미의 캐릭터를 적절한 선에서 소화한다. 원더걸스의 ‘텔미’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영화를 촬영한 안소희는 딱 그 또래들 만큼의 풋풋한 매력을 보여준다.

 희한한 것은 한집에 사는 세 여자의 갈등이 저마다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점이다. 세 여자가 혈연으로 설정된 것은 서로 다른 세대를 한 화면에 넣기 위한 장치일 뿐, 실체적인 가족관계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목에 ‘뜨거운 것’을 내세웠으되, 이 영화의 감성은 아무래도 ‘쿨’한 편이다. 세 여자는 남들이 정해준 정답을 확인하는 대신 자기 안에서 답을 발견하는 길을 간다. 비교적 유쾌한 여정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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