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노인의 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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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너해쯤 전의 일이다.서울 변두리의 한 경찰서에 칠순 안팎의할아버지.할머니가 연행돼 왔다.그 사연이 딱했다.배우자 없이 자식들에게 얹혀 살던 이들 두 노인은 동네 노인정과 산책길에서만나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어느날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받은 10만원권 수표 석장을 내보이며 자랑했다.용돈에 쪼들리던 할머니가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자 할아버지는 이 돈을 주겠노라고 제의했다.그 제의에는 물론「반대급부」가 전제돼 있었다.할머니가 응낙해 두 노인은 은밀한 장소를 찾아갔다.그러나 할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성사」가 되지는 못했다.할머니는 약속이행을 요구했고,할아버지는 불응했다.마침내 심한 언쟁으로 발전해 두 노인은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에게 연행된 것이다.이사건아닌 사건은 경 찰의 중재에 따라 할아버지가 약속한 액수의절반을 할머니에게 주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경찰의 간곡한 당부로보도조차 되지 못했지만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그리 단순하지않다.특히 노인들의 성(性)문제에 관한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 관심하고 있는가를 새삼 돌이켜보게 한다.사람에 따라 다소의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70세 안팎의 노년기에 접어들더라도 75%의 노인들은 성능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본다.바꿔 말하면 70대 할아버지라도 배우자가 없다면 이따금씩 솟아오 르는 성적욕망을 분출할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체는 더 말할 것도 없고,자식들조차 노인의 성문제는 금기(禁忌)로 삼는다.주책없는 짓이며,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막상 당사자도 자식들 앞에서 감히 그 문제를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정신의학자들은 그 까닭에 노인들의 섹스는「용불용설」(用不用說)에 정확하게 적용된다고 본다.사용하지 않으니까 급속도로 퇴화하고,성적 욕망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력도 감퇴해 수명까지 단축케 한다는 것이다.
대전「노인의 전화」가 노인들의 상담전화를 분석한 결과 재혼상담이나 이성을 소개해 달라는 내용이 47%에 달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누구나 늙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감안한다면 노인들의 그같은「말 못할 외로움」은 우리 모 두의 것일 수도 있다.인간의 본질적 욕망이라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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