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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담장, 돌담길을 걷다 ①_ 토석담

중앙일보

입력

삼십 년 거슬러
고향 돌담길
마음이 걸음 걷네
호박 넝쿨 옹기종기
나팔꽃 방긋이
벌들 합창 시끌하고
동심이 그린 낙서
미소 벽화 희미한데
시샘하듯 해님 얼굴 붉히다
정겨운 흙 냄새
향수로 가슴 안겨 오면
아, 그리운 고향 돌담길.

-장윤기 '돌담길'-

시인의 말처럼 ‘돌담길’은 언제나 향수의 길이다. 고향집 사이사이로 좁다랗게 이어진 옛 돌담길을 생각하면 이내 마음은 그 시절을 걷는다. 담장 너머로 동무 이름을 불러내던 외침, 담장 밑 풀꽃 따다 소꿉놀이 하던 아우성, 돌담길 사이를 내달리며 숨바꼭질 놀이에 해 저무는 줄 몰랐던 그 시절 기억의 파편들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그런 면에서 돌담길은 어른들에게 또 하나의 타임머신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유산이기에 그 아련함은 더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문화재청이 사라져 가는 돌담길을 보존하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경남 고성 학동마을 등 전국 17개 마을 돌담길을 문화재로 등록하였다. 옛 담장은 담장 벽체의 재료에 따라 돌담과 토석담, 토담 등으로 구분되는데 등록문화재 17개 마을 중 7개 마을이 돌담, 10개 마을이 돌과 흙을 교대로 쌓아 만든 담장, 토석담으로 되어 있다. 담장 아래는 돌로만 되어 있더라도 윗부분이 돌과 흙을 교대로 쌓아올렸다면 이 또한 토석담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돌담과 달리 층층이 쌓아올린 돌 틈 사이로 흙냄새까지 간직한 토담길은 내륙지방에서 많이 나타난다.

“경남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학동마을은 전주 최씨 선조의 꿈속에 학(鶴)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자,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믿고 입촌,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이곳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2.3km에 이르는 돌담길 중에서도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 년을 거슬러 고성(古城)으로 끌어들이는 듯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경남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거창 신씨 씨족마을인 황산마을. 마을 어귀에부터 군 보호수로 지정된 폭 5m 이상, 높이 15m 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듯 자리하고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담장은 대개 토석담이지만 담 하부 2~3척 정도는 진흙을 사용하지 않고 큰 자연석만을 사용해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雨水)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고가와 어우러져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 길은 고즈넉함은 물론 아늑한 느낌마저 준다.

“경남 산청 단계마을 옛 담장”
예로부터 단계(丹溪)가 있는 신등면은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손꼽혔으며 유명한 ‘산청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자연히 세도가와 부농(富農)이 모여 살아 인물이 많이 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 내 전통주택들은 조선후기에서 근세에 이르는 시기에 건립된 부농주택으로 규모가 매우 커 권위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담장은 돌담과 토석담이 혼재되어 있으며 높이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2km가 넘게 이어지는 마을의 담장은 전형적인 농촌 가옥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특히 ‘단계박씨고가’ 진입부의 돌담길은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으며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여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전북 무주 지전마을 옛 담장”
지전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예전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마을 옆을 흐르는 남대천가의 오래된 여러 구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마을 뒤로는 소백산 줄기가 이어지고, 마을 뒷산에서부터 마을의 좌측을 지나 흐르는 남대천은 여름철 관광지로서도 유명할 만큼 우수한 경관을 뽐내고 있다. 그리 길지 않게, 700m에 걸쳐 집 사이사이로 길게 이어진 돌담길은 한 걸음에 마을을 안내한다. 또한 가가호호 머리를 내민 감나무는 담장과 어우러져 산골 마을의 아담한 풍경을 자아낸다.


“전북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
토석담 외에도 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을 눈으로 발로 경험하고 싶다면 전북 익산의 함라마을을 찾으라. 특히 차순덕 가옥의 담장은 거푸집을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흙과 짚을 혼합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기 드물게 전통적인 축조 방식을 자랑한다. 전통가옥들과 마을 한편에 자리한 문화재자료 제85호 ‘함열향교대성전’은 전통마을로서의 품위를 더해주고 있으며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해온 묵은 돌담길은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여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전남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옛 병마절도사의 영(營)이란 명칭에서 유래된 병영마을은 주위의 수인산, 성자산, 옥녀봉, 별락산, 화방산 등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천연요새로, 일찍이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영성이 이곳에 들어섰다. 아직도 ‘병영성지’가 남아있다. 병영마을이라는 특성답게 담장의 높이가 2m 정도로 높은 편이며, 마을 안길이 직선형으로 되어 있어 담장이 한층 정연해 보인다. 특히 이곳의 담쌓기 방식은 중단 위쪽으로는 얇은 돌을 약 15°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 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는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으로 타 지방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전해준 것으로 이곳 사람들은 이 형식을 ‘하멜식 담쌓기’라 부른다.

“전남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옛 담장”
이곳은 동편에는 월봉산, 남쪽에는 국수봉이 솟아 있고 마을 앞을 흐르는 천의 모습이 봉황이 날개를 뻗어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삼지(내)천〔三支(내)川〕이라 불렀다. 마을 내에는 시도민속자료 제5호 ‘담양고재선가옥’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전통한옥이 잘 남아 있다. 담장은 전반적으로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으로 비교적 모나지 않은 화강석 계통의 둥근 돌을 사용하였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혼재되어 있다. 대체로 담 하부에는 큰 돌이, 상부로 갈수록 작은 돌과 중간 정도의 돌이 사용되었다. ‘S'자형으로 자연스럽게 굽어진 마을 안길은 옛 전통한옥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구 옻골마을 옛 담장”
약 400여 년간 경주 최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온 마을이다. 마을 뒤에는 주산인 해발 390m의 옥고개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왼편에는 황사골, 오른편에는 새가산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터는 세장하며 농토 또한 비교적 좁은 편이다. 마을의 가옥은 대부분 전통한옥으로 대도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시골냄새를 물씬 풍길 정도로 예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시도민속자료 제1호 ‘둔산동 경주최씨종가 및 보본당 사당’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의 돌담길은 전통가옥들과 어울려 자연스런 동선을 만들어 내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마을 안길의 돌담길은 대부분 직선으로 이어져 있어 질서정연한 느낌을 준다.

“경남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
토담과 돌담이 공존하고 있다. 대개 마을 내 반가(최씨고가, 이씨고가)나 사양정사, 이사재 주위는 토담이 잘 남아 있으며, 마을 안 서민들이 거주하는 민가에는 돌담이 많이 사용되어 전통사회의 신분에 따 담의 구조와 재료, 형식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마을의 이끼 낀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그 고즈넉함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는 착각에 빠지다가 X자로 몸을 포개고 있는 회하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르면 자연과 돌담의 절묘한 조화에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묵은 토담과 돌담은 마을주민들이 남사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강돌을 사용하여 주택 외곽과 밭 주위에 쌓은 것으로 경남 서부지방의 반촌의 전통적인 공간구조와 담장형식과 구조를 잘 보여준다.

“경남 의령 오운마을 옛 담장”
오운마을은 밖에서 보면 산으로 둘러져 있어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 지형으로 전체적으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뒷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그리고 있다. 특히 안당산과 바깥당산에 수령이 약 5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 참나무 등이 마을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돌담으로 이어진 과 어우러져 예스러운 정취를 자아낸다.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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