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투자공사 메릴린치에 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우리나라의 ‘국부 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세계적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한다. 메릴린치가 신규 발행하는 20억 달러 규모의 우선주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이 우선주는 연 9%를 분기별로 배당하되 투자 후 2년9개월이 될 때 보통주로 전환된다.

KIC는 14일 이런 내용의 전략적 투자를 결정했다. KIC는 물론 국내 자본이 글로벌 금융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IC는 그간 선진국 주식과 국채 등 안전자산에만 투자해 왔다.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KIC는 메릴린치 지분을 3% 이상 보유하게 된다. 뮤추얼펀드 등을 제외하면 싱가포르 자본인 테마섹(9.6%)에 이어 메릴린치의 2대 주주에 해당한다. 메릴린치를 비롯한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본 뒤 이를 메우기 위해 투자자들을 물색해 왔다. 메릴린치는 이르면 16일 KIC와 쿠웨이트 투자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유치하는 내용의 자금 조달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메릴린치는 지난달 싱가포르 테마섹과 뉴욕 소재 뮤추얼펀드 데이비스 실렉티드 어드바이저스로부터 64억 달러의 자금을 수혈받았다.

 KIC 관계자는 “이번 투자를 위해 이달 초 메릴린치에 대한 현장 실사를 마쳤다”며 “서브프라임으로 손실을 입은 채권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매우 양호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KIC의 이번 투자는 지난해 말 재정경제부로부터 1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위탁을 약속 받은 후 적극적으로 투자 대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KIC는 지금까지 안전성을 내세운 간접투자 위주로 운용해 왔으며,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메릴린치는 충분한 자금력을 갖고 있되 지분을 시장에 쉽게 내다 팔지 않을 안정적인 투자자를 원했다”며 “KIC 등 아시아 지역의 국부 펀드들이 적격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최근 아시아 지역 국부 펀드에 대한 미국계 투자은행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12월 중국 1호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로부터 50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이달 초 중국 국가개발은행(CDB)에서 20억 달러를 빌리려고 했으나 중국 정부의 반대로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이상렬·김준현 기자

◆KIC=외환보유액 등 공공부문의 여유자금을 효율적으로 굴리기 위해 2005년 7월 출범한 ‘국부 펀드’. 한국은행 및 재정경제부에서 외환보유액과 외국환 평형기금을 빌려 와 이를 운용하는 회사다. 설립 초기 연간 투자 자금은 약 200억 달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