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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추억의영화 100選 34.태양은 가득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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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빵과 은촛대를 훔치고 평생 자베르 형사에게 쫓기는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과 황당한 이유로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고민하는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를 우리들은 불쌍한 범죄자라고 동정한다.
그들 두 사람보다 훨씬 처량한 범죄자가 바로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의 주인공 톰이다.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라는 영화에서 자클린 사사르.미렌 드몽조처럼 말랑말랑한 여배우들과 연애만 하던 「미남 청춘배우」알랭 들롱은 장 가뱅.찰스 브론슨처럼 험악한 사람들과 어울려 범죄영화를 만드는 시대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에서 르네 클레망 감독의 이 영화를 맞아 참으로 불쌍하고 초라한 남자의 역을 눈물겹게 해낸다.
가족에게 무성의하고,애인 마르주(마리 라포레)에게도 무성의하고,인생 자체에도 불성실하며,놀기만 하는 것이 일인 프랑스제 오렌지족 필립(모리스 로네)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아버지에게 데려다주면 5천달러를 받기로 돼 있어서 그 돈벌이 를 위해 치사하게 쫓아다니느라고 궁색한 톰은 얼마나 심한 수모를 당하는가.「돈밖에 모르는 친구」라고 필립의 괄시와 멸시를 받고,식탁에서 나이프를 제대로 쥘줄 모른다는 무안을 당하고,어릴적 친구 사이인 필립의 비서.몸종.경리.하인.요 리사.헬리콥터 조종사까지 해주면서 마르주와 필립이 연애하는 광경을 구경하다 구명정으로 쫓겨나 표류를 당하기도 한다.
친구의 화려한 삶을 창 밖에서 부러워하며 구경만 하는 톰은 가진 것이 없어 친구의 옷을 몰래 입어봤다가 들켜 벗어놓으라고야단까지 맞는다.
나를 죽이고 싶지 않느냐는 필립의 약올림 끝에 음모에 착수해결국 필립을 죽여 돛조각에 싸서 바다에 버리고,죽은 자를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 아슬아슬한 곡예를 부린다.
또 여권을 변조해 환등기로 서명을 위조하는 연습도 하고,그래서 필립의 대리인생을 시작하며 목소리를 변조해 마르주를 유혹하고,결국 자살극으로 경찰까지 속이면서 천신만고 끝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필립의 돈과 애인까지 차지하게 되지만 세상만사란 어쩌면 그토록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노력 끝에 성공과 행복이 온다더니 드디어 행복을 찾나보다 하는 관객의 기대는 스크루에 얽힌 로프 한가닥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럴 바에야 푸른 바다와 눈부신 하늘에는 차라리 태양이 가득하지 않든지,니노 로타의 음악이 그토록 아름답지만 않았더라면 속이 덜 상했을텐데.영화 『러키 레이디』에서 술을 밀수하던 진해크먼과 버트 레널즈가 신나는 모험을 벌이다 마 지막에 죽어버리니까 사람들이 너무 섭섭해하기에 비디오로 나올 때는 그 장면을 다시 찍어 두 사람을 살려놓았던 할리우드가 생각난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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