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신분 노출' 속앓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가정보원이 고위 간부의 잇따른 청와대 행으로 인한 뒷수습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특성상 베일에 싸여 있어야 할 핵심 간부의 신분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옮긴 서훈 단장은 김보현 3차장(북한 담당) 직속 부서에서 대북 막후 협상을 맡아 왔다.

북한 측에 '청와대 국장'이란 위장 직함을 써왔지만 청와대가 임명 사실을 발표하면서 국정원 사람임을 먼저 공개해버렸다.

노무현 정부 출범 때 NSC 정보관리실장에 발탁됐다 지난 10일 국정원으로 복귀한 김만복 기조실장도 자리를 오가는 과정에서 해외 파견 근무와 국정원 대북 부처의 경력이 노출됐다. 앞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는 '대통령 특보'직함으로 평양에 갔던 임동원 당시 원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정원장'이라고 부르는 게 TV로 생중계된 일도 있다.

한 관계자는 24일 "국정원 간부의 잦은 신상 노출은 신뢰도를 떨어뜨려 정보 수집 활동은 물론 해외 기관과의 정보협력에 장애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 대결 시대인 1970년대 남북대화의 유물인 위장 직함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영교 국정원 대북전략기획국장은 '통일부 국장'으로 남북 장관급회담 대표로 참여 중이지만 이미 북측도 실체를 파악한 상태다. 이종석 NSC 사무차장은 19일 한 모임에서 "위장 직함을 써도 북한은 다 아는 것 같더라"며 무용론을 제기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