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서 6세기 木簡 출토 "호적 작성…日보다 100년 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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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那休智(아나휴지).阿那舌只(아나설지).內恩支(내은지).居助支(거조지)ㆍ仇禮支(구례지)… 낯설게 들리는 이 단어들은 신라시대 호적에 올라 있던 우리 조상들 이름이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선태)가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유물류 중 색인용 목간(木簡)으로 생각되는 112점에 대해 적외선 촬영을 실시한 결과 그중 93점에서 나온 묵(墨)글자 약 400자 중 확인한 인명이다.

김소장이 24일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신라가 일본보다 100년가량 앞선 6세기 중반 진흥왕(540~578년) 무렵에 이미 각 지방별로 호적을 작성해 지방과 민(民)을 관리하는 중앙집권적 사회를 이뤘음을 알 수 있다.

이성시(李成市)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특히 목간류 가운데 두루마리 문서에 꽂는 목편이 발견된 것은 신라시대 성산산성에 행정 문서를 보관하던 '문서창고'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이 무렵 신라의 문서행정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이런 목간은 중앙 국가권력이 각 지방 호적을 작성하고, 또 이를 통해 각 민(民)에 대한 실태를 철저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작성되기 힘들다"면서 "신라가 진흥왕 무렵에는 호적을 작성하고 이를 통해 지방과 민을 통치했음은 거의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이교수는 또 "이런 목간이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1세기가량 늦은 7세기 후반에야 나오기 시작하며 나라(奈良)의 쇼쇼인(正倉院)에는 실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목간을 정밀 판독한 결과 새 인명 23개가 확인됐으며, 古陀(고타.안동 추정).鄒文(추문).巴珍兮城(파진혜성).巴珍兮村(파진혜촌).阿卜智村(아복지촌) 등 17개의 지명도 새로 밝혀졌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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