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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돕는 분들 그렇게 많다는데…내가 할 수 있는 건 모금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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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앙포토]

 “태안을 돕고 싶어요.”

 지휘자 정명훈(55·서울시향 상임)씨가 4일 갑작스럽게 서울시향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미국 하와이에서다. 정씨는 2일 서울시향 신년음악회를 마친 뒤 하와이로 떠났다. 큰아들 진(28)씨의 결혼식 때문이다.

 휴대전화도 없이 “휴가 겸 다녀오겠다”던 정씨가 태안 기름 유출 사태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정씨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돕고 있다는데 말이에요.”

특히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이어진다는 소식이 정씨를 움직였던 모양이다. 그는 “아름다운 환경이 망가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음악 뿐”이라고 말했다. 모금 연주회를 제안한 것이다.

 서울시향과 예술의전당이 빠르게 움직였다. 시설 점검을 위한 정기 휴식기간 중이었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무대를 내줬다.

 처음에는 티켓 판매 수익금을 태안 주민에게 전달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그러자 정씨는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도움이 좋지 않겠느냐”며 색다른 의견을 내놨다. 결국 그의 뜻에 따라 기업인과 시민을 초대해 음악을 들려준 뒤 성금을 모금하기로 했다. 무릇 남을 돕는 것은 자발적인 게 최고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힘을 보태 일정 금액을 미리 모금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이달 20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태안 주민을 위한 특별 콘서트’가 열리게 됐다. 공연 중에 악단 뒤로 심각한 태안의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이 계속 상영될 예정이다.

 청중은 초대 받은 중소기업인 1700명과 일반 시민 800명. 정씨 지휘로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1번을 들은 뒤 공연장 로비에 놓인 모금함에 성의껏 성금을 넣으면 된다. 성금은 전액 태안 주민에게 전달된다. 자선 행사에서 흔히 있는 ‘기본 경비 제외’도 없다. 정씨가 한 푼의 출연료도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뜻을 이해한 단원들도 모두 대가 없이 무대에 서기로 했다. 그 지휘자에 그 단원들이다.

 정씨가 자녀 결혼 때문에 방문한 하와이에서까지 연주회를 기획한 것은 환경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그는 “이제 환경에 대한 관심은 한국인들의 피할 수 없는 의무가 됐다”고 말했다. 예술가는 예술로, 기업인은 환경 경영으로, 정치인은 환경 정책으로, 주부는 친환경 생활로 각자 자기 자리에서 환경을 위해 할 일을 해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실 그는 1995년 “음악인으로서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환경 페스티벌을 주최했을 정도로 ‘환경과 예술의 퓨전’ 분야에서 선구자다. 연출가 김민기와 손잡고 메시지를 넣어 환경음악극 ‘오션월드’ ‘번데기’라는 제목으로 작품 지휘를 맡았다. 뮤지컬에 가까운 음악극이었고 재즈 가수 나윤선 등이 출연해 처음에는 화제를 모았다.

 그는 “그때만 해도 환경에 관심들이 어찌나 없던지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아 세 차례만 하고 그만둬야했다”고 회상했다. “첫 공연은 화려하게, 두번째는 억지로, 세번째는 흐지부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고 했다. “한국인에게 이제 남은 과제는 ‘균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돈 벌며 살았던 한국인들이 이제 환경을 돌보고 다른 사람에게 가진 것을 나눠주며 살아야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태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동시에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 또한 이러한 ‘균형 잡기’의 한 방법이다. 그는 “13년 전에만 해도 환경 콘서트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웰빙’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태안으로 향하는 자원봉사 행렬에서 무한한 희망을 느꼈다”고도 했다.

 정씨는 매일 아침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태안 공연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 음악회가 깜짝 이벤트에 그친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다. 좀 더 듣기 편한 곡이 아닌 말러의 교향곡을 고른 이유도 진심을 진지하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직접 태안에 가서 위로 연주회를 열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방안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면서도 “앞으로 태안의 환경을 되돌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정씨가 내놓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음악을 감상하고 태안을 돕고 싶으면 예술의전당(www.sac.or.kr),서울시향(www.seoulphil.or.kr),문화관광부(www.mct.go.kr),중소기업중앙회(www.kbiz.or.kr)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 청중을 선발할 예정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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