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위기의 한국영화 누구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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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 영화산업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110편에 이르던 제작 편수가 60편대로 줄어들고 관객 수는 마이너스 25%, 2000여만 명이 줄었다. 한국인의 자부심인 한류(韓流)의 한 축을 이루며 잘나갔던 한국영화의 수출은 2년 전 최고치에서 85%나 격감했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투자 수익은 반 본전도 안 된다. 100만원 투자해 1년 후에 38만원 돌려받는 어처구니 없는 산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충무로 영화산업판에 돈이 말라 버린 것은 당연하다. 한국영화의 비즈니스 모델 그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 붐은 1999년 설날, IMF 시대의 짙은 우울이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던 시절에 예고도 없이 시작됐다. 영화 ‘쉬리’에 대략 600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한번 터진 봇물은 끝장을 보는 법. 붐은 820만 명을 기록한 ‘친구’로 이어졌다. 그러자 충무로에는 ‘제작자보다 투자자 수가 더 많다’거나 ‘충무로 개는 돈을 물고 다닌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돌아다녔다.
 
여기에 당시의 김대중 정부는 1700억원을 전액 국고로 지원하는 ‘한국영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돈으로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재편 과정에서 영화라는 올드 미디어를 어떻게 위치시켜야 하는가를 구상하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를 근거로 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친정부적인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화진흥위원회는 귀중한 국민의 세금을 시드머니로 하고 그 위에 중기청 자금과 민간 투자자금을 더해 영상투자펀드를 만들었다. ‘영화인들이 영화정책을 직접 세우고 집행한다’는 듣기에 좋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자금이 2006년까지 무려 5438억원이다. 90년대 말까지 평균 500억원의 제작자본이 연간 2회전하면서 작동하던 영화산업에 돈비가 쏟아져 영화 한 편당 제작비는 2.5배 증가하고 마케팅비는 6배나 폭증했다.

여기에 한국의 악성 거품 삼형제인 부동산-신용카드-이동통신 거품까지 가세했다. 부동산 붐으로 전국의 스크린 수는 588개에서 지난해 말 현재 2000여 개로 늘어났으며, 극장의 입장요금은 신용카드와 이동통신사들이 각각 2000원까지 할인해 주었다. 최신 시설의 빛나는 멀티플렉스에서 정규 요금의 반 이상 덤핑된 가격을 지불하고 몇 배 상승된 제작비로 만들어진 한국영화를 볼 때는 좋았다. 그러나 한국에 비해 10배나 높은 국내총생산(GDP)을 가진 일본보다 높은 제작비와 일본 배우보다 2배나 많은 출연료를 받는 한국 스타들을 가진 한국영화 비즈니스 모델이 유지될 수는 없었다. 그 결과가 투자수익률 -62.1%인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은 모래 위에 지은 성, 카드로 만든 집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거품 속에서 국민의 세금과 국가의 자원을 낭비하고도 당사자 격인 영화진흥위원회는 반성이 없다. 한국영화의 위기가 시스템과 구조적 위기가 아니고 계절적·순환적 위기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 영화 하나만 나오면 붐이 부활할 거라는 미신까지 유포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추락이 정작 최대 관객을 동원한 ‘괴물’ 상영이 끝난 2006년 가을에 이미 시작됐는데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정부는 영상산업을 중심으로 콘텐트 산업을 신동력 산업으로 지정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실사 영화의 진흥은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은 문화콘텐츠진흥원, 텔레비전 드라마는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담당하는 등 관련 산업을 담당하는 정책 기관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전문적 기관의 주요 보직을 전문성이 떨어지는 친정권 인사로 채웠다. 한국의 문화산업 정책, 이제 새로운 비전을 갖추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강한섭 서울예술대학 교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