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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록금 벌려다 아빠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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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살려고,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불쌍해서 어떡해…”

 8일 오전 11시30분. 냉동창고 화재 사망자들의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이천시 창전동 이천시민회관. 아들 임남수(29)씨의 위패 앞에 주저앉은 어머니 한모(54)씨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한씨는 “아직도 ‘엄마 내 팔뚝 좀 만져 보라’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믿을 수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임씨는 냉동창고 현장에서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했다. 컴퓨터 자격증을 따 수년간 중소 IT업체에서 일하다 지난해 초 이 업체에 취업했다. 건설업을 ‘밑바닥부터’ 배워 언젠간 자신의 업체를 세우겠다는 포부가 있었다고 한다.

 임씨의 외삼촌은 “스스로 ‘취업 후 1년이 가장 열심히 살았던 한 해’라고 자부할 만큼 열심히 살던 아이”라며 “혼자 독립하겠다면서 매일 새벽처럼 출근하던 아이의 웃음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감 찾았다’며 기뻐했는데…”=사망자 40명 대부분은 임씨처럼 하청사 직원이거나 인력시장을 통해 일감을 찾은 일용직 근로자다. 김완수(47)씨는 애초 비번임에도 일터를 향했다가 변을 당했다. 3주 만의 휴일이었으나 회사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출근했다. 평소 그는 동료들에게 “딸의 등록금만은 내 손으로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외동딸 현아(19)씨는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힘들어도 도울 수 있다’며 날 안심시키셨다”며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 청소를 하다 숨진 이을순(55·여)씨는 가족들에게 공사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아들 유지상(33)씨는 “농한기인 겨울에 소일거리 삼아 ‘한 푼이라고 벌겠다’고만 하셨다”며 “매일 새벽 6시면 나가 해질 녘에 돌아오셨는데 험한 공사판에서 일하실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숨진 전기업체 직원 장행만(49)씨는 냉동설비 기술자다. “기술을 제대로 배우겠다”며 몇년 전 전문대로 진학, 최근 졸업했다. 아내와 두 아들은 경기도 안산의 15평 임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자신은 이천에서 자취 생활 중이었다. 부인 나영인(47)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늦둥이 아들을 보며 하루하루가 즐겁다던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직업 특성상 일거리를 따라 전국을 돌며 살아온 이가 많았다. 전날 밤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됐던 사망자 우영길(38)씨의 고향은 전북 익산. 결혼 뒤론 공사 현장을 찾아 수차례 이사를 반복했다. 요즘도 이천의 원룸에서 살며 주말에 의정부 집에 가는 ‘주말 부부’다. 한 친척은 “평생 아내와 세 아들딸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올해엔 꼭 큰아들의 ‘언청이(구순구개열)’ 수술비를 마련하겠다’고 말해 왔는데…”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고 우민하(38)씨의 아버지 희선씨는 “인문계 고교를 졸업한 뒤 일용직으로 전전하다 10년 전부터 용접공으로 근무해 왔다”며 “일감을 찾아 전국을 도는 생활을 하면서도 안부 전화와 함께 용돈을 보내주던 착한 아들이었다”고 전했다.

천인성·이충형·강기헌 기자

 ◆확인된 사망자(16명, 9일 0시 현재)

 김용민(33), 이을순(55·여), 김준수(32), 김용해(28·중국 동포), 강재용(66), 최승복(53), 조동명(44·중국 동포), 이용호(44), 지재헌(46), 윤석원(43), 김태규(30), 김우익(50), 이준호(41), 우영길(39), 윤옥주(55·여), 윤종호(3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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