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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북녘동포>2.식량난에 풀린 여행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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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행제한 부분해제=북한에서 통행증 얻기는 보통 주민으로선 매우 어렵다.
식량 구하기 여행을 자주 다녔던 함흥의 이옥금(李玉錦.45.
여만철씨 부인)씨의 증언-.
『94년1월부터 큰 변화가 왔다.식량사정이 긴장하니 할 수 없이 함경북도당 책임비서가 식량 구하러 여행하는 사람에겐 모두여행증명서를 떼주라고 특별 지시했다.결국 함남에서도 2월부터 여행증을 쉽게 떼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개인별로 여행증을 떼주기가 너무 번거로워 누구외 동행 몇명 하는 식의 여행증을 떼주는 이변이 일어났다.나는 여행증을 떼어평북.황해도.강원도의 친척집을 찾아다녔다.
도시지역에서 무슨 물건이든 구해 농촌으로 가져가면 공산품 공급이 거의 중단된 농촌지역 주민들은 반긴다.비누.속옷이 특히 인기품목이다.89년에 쌀 한되와 비누 2장을 교환했는데 91년에는 비누 3장으로 올라갔다.』 청진의학대학생 박수현(朴秀現.
28)씨는 『젊은이들은 보통 배낭 50㎏짜리 두세개를 갖고 다닌다』며『규정상으론 10㎏을 초과할 수 없고 발각되면 벌금을 내야 하므로 안전원들은 이를 근거로 뇌물을 받아먹는다』고 말했다. 거간꾼들이 북한 전역을 휘젓고 다니는 것도 여행통제의 일각을 무너뜨리는 변수가 되고 있다.
▲여행통제의 실상=여행통제가 풀리기 전엔 주민 누구나 시.군경계를 벗어나는데 필요한 여행증명서 발급에 애를 먹어야 했다.
여행증 없는 여행은 추석때나 가능했다.
67년부터 엄격히 시행되어온 여행증 발급은 시.군 안전부 2부가 담당한다.여행증 발급에 관한 엄만규(嚴萬圭.38.김책제철소 대보수사업소 자재과직원)씨의 증언-.
『여행증을 얻으려면 직장에 신청서를 내야 한다.경리의 수표(서명)를 거쳐 직장장.지배인의 수표를 받으면 신청서가 안전부(경찰서)2부로 넘어간다.여행 사유가 인정되면 3일뒤쯤 여행증이나온다.평양에 가려면 더욱 까다롭다.해당 안전부에 서 평양의 방문지 주소로 연락을 취해 허락을 얻어야 특별여행증이 발급된다.』 평양에 들어갈 수 있는 증명서와 전연지대(전방)나 국경지대를 드나들 수 있는 통행증은 별도로 존재한다.
임영선(林永宣.31.인민무력부 군사건설국 건설여단 경비소대장)씨의 증언-.
『평양시에 진입할 수 있는 여행증은 빨간색 사선이 2줄,전연지대는 파란색 사선이 2줄 그어져 있다.전연지대는 여행증 검열이 특히 까다로워 안전원들이 다른 도에서 온 사람들의 여행증을다 거둬 여행증의 승인번호에 이상이 없는지를 꼼꼼 히 챙겨본다.』 출장자들은 출장증명서,도급 당간부 이상은 신임장이란걸 갖고 다닌다.
철도여행에 검열은 대체로 두차례 이뤄진다.여행증은 철도안전원이,열차표는 철도검열원이 각각 체크한다.군인은 경무원(헌병)이별도 검사한다.
열차가 서너시간 연.발착하는 것은 보통이다.하루씩 고지없이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도 없지 않다고 김영성(金永成.61.건축설계사)씨는 전한다.레일과 기관차가 낡은 까닭도 있다.김일성(金日成).김정일(金正日)의 지방 현지지도 때 그 노 선의 다른 열차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두 정지된다.김정일에게 올려보내는선물열차,당중앙 지시에 의한 특별화물 수송,군수물자 수송등의 이유도 있다.
회령고중시절 무단가출로 평양을 여덟차례나 드나들었던 황광철씨의 증언-.
『에너지난이 극심한 겨울에는 5~6시간 연착은 양호한 편이다.24시간 연착도 있고 회령을 하루 한번씩 지나는 4개선,즉 회령~청진간,나진~신천간,온성~평양간,나진~갈마간 열차중 하나는 「미정」이란 게시판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북한의 역대합실에선 언제나 하염없이 열차를 기다리는 주민들을 볼 수 있다.』 ***뒷거래.위조 빈번 ▲여행증 얻기 백태=개인사유로 여행증 얻기가 어려운 만큼 뒷거래와 위조도 무성하다.
신의주의 허철(許哲.24)씨는『여행증은 안전부 2부의 안면있는 사람에게 돈이나 담배를 주고 쉽사리 구할 수 있다』면서 『2부 과장의 아들이 친구였는데 관련서류를 몰래 빼내 물건받고 여행증을 만들어주곤 했다』고 밝혔다.
평양출입의 특별통제도 뇌물로 녹일 수 있는게 오늘의 북한 현실이다.회령에선 평양행 여행증을 4백원(노동자 월급이 80~1백원)이면 살 수 있다고 황광철씨는 증언한다.』 여행증명서 위조도 행해진다.여행증에는 승인번호가 쓰여있는데 대개 매월.매분기의 비밀번호에다 여행자의 상황을 반영해 숫자가 나열된다.그 비밀을 알고 위조 증명서를 갖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청진광산금속대학생 윤웅(尹雄.29)씨의 체험-.
『나는 다른 사람의 공민증을 빌려 여행증을 발급받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철도안전원들은 여행증의 생년월일에 따른 비밀번호만 확인할뿐 여행증과 공민증을 대조하지는 않는다.때문에 다른 사람의 공민증을 지니고도 쉽게 안전원을 속일수 있다 .』 여행증이 없으면 열차표를 발급해주지 않아 아예 여행증도,열차표도 없이 떠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평남 속도전 청년돌격대원 김형만(21.가명)씨는『여행할때 증명서를 끊어본 적이 없다』면서『검열을 피하기 위해 빵통위에 타고 타잔처럼 곡예하면서 다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그는 콩나물시루 같은 해주~만포행 열차에서 그런 광경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현씨의 관련 증언-.
『대학생들은 가난하고 항상 배고프다고 생각해 열차표를 으레 안끊는 것으로 돼있다.대학생중 제대군인출신들이 장사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향에 식량을 구하러 가는 것은 흔한 일이고 자기가소속돼있던 부대로 가서 쌀등 식량과 내의.겉옷.신 발.양말따위를 빼내오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탈영병들과 가출소년들도 열차를 무임 승차한다는게 귀순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관용번호판 이용 ▲승용차 여행의 특수층=무역일꾼들은 철도여행을 회피하는 편이다.이들은 대개 벤츠나 도요타.닛산제등 승용차를 몰며 전국을 휘젓고 다닌다.하도 빈번히 여행해 웬만한교통안전원들은 차를 세우지 않는다.무역일꾼들은 승용차 여행때 거치는 주요 교통통제 길목에는 담배.술등 뇌물로 미리「사업」을해 친분관계를 유지한다.
정무원의 무역회사 대외사업지도원 김동만(43.가명)씨와 북송동포 2세 진광호(秦光鎬.27)씨 등은『벤츠를 몰고 다니는 일부 거간꾼들은 관용차 번호판을 가지고 다니다가 붙였다 뗐다 한다』면서『북한의 차량은 자동차 번호만 보면 소속을 알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지 않아 가짜 번호판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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