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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침착한 고베市民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마리코,지요코 모두 사이좋게 힘을 내서 엄마를 도와주기 바란다. 나의 아들 쓰요시야.너는 우리집의 장남이니 너만 믿는다.집안을 잘 이끌어다오.여보,사랑하는 아내여.아이들을 부탁하오. 부디 잘 있으시오.안녕.』 지난 85년 일본(日本)군마(群馬)縣 오스다카(御巢鷹)山에 JAL機가 추락,승객 5백20명이사망했다.이 사건은 세계 민간항공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됐다.그러나 당시 세인(世人)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사고 그 자체보다 몇명의 승객들이 남긴 피묻은 유서(遺書)들이었다.비행기가 추락하는 5분 남짓 짧은 시간에 그들은 가족들을 위한 유언을 메모로 남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침착성을 보여줌으로써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일본인들의 침착성과 질서의식은 유명하다.이번 간사이(關西)대지진에서도 그들의 침착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당한 고베(神戶)시민들은 마치 지옥과도같은 처참한 상황속에서도 놀라우리만큼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급수차가 도착하면 영하의 추위속에서도 질서있게 줄을 서 자기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생필품 사재기도 없고 값을 올려 받는 상점들도 없다.공권력(公權力)부재의 상황 속에서도 별다른 사건이 없다.고베 경찰당국은『지진발생 이후 지진에 따른 사고는 있었지만 강력사건 등 일반사건은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모두가 평소 훈련받은대로 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현지 취재중인 우리 기자들은 그들의 이같은 침착함을『무섭다』고 표현했다.10여년전 미국(美國)뉴욕에서 정전(停電)사고가 났을 때 강도.약탈.강간 등으로 뉴욕市 전체가 무법천지로 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국화(菊花)와 칼』에서 일본인들이 갖는 특성 가운데 하나로 자기 수양에 의한 극기(克己)를 들었다.베네딕트는 일본인들에게 자기 수양은『자기 몸에 생긴녹을 떨어내는 것』과 같으며 이 때문에 미국인들 이 참기 힘든일들을 일본인들은 잘 참아낸다고 주장했다.엄청난 재난을 당하고도 평정(平靜)과 침착함을 잃지 않는 고베시민들에게 경탄(驚歎)과 박수를 보내면서 피해복구작업이 하루빨리 끝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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