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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위기상황 대처 상반된 두얼굴-침착한 시민질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8일 저녁 고베(神戶)시의 기타노(北野)소학교 운동장에는 시청 급수차 2대가 도착하자 소리없이 두개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6백여명의 이재민들은 차례로 20ℓ씩의 식수를 공급받기위해 약속이나 한듯「ㄹ」字로 2백여m의 긴 줄을 만들어섰다.
급수는 영하의 날씨속에 한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새치기는 물론지쳐 땅바닥에 앉아있는 사람 하나 없었다.
최악의 대지진 앞에서도 고베시민은 의연했다.한순간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은 곧바로 침착을 되찾고 질서를 회복했다.
도시의 생명선인 수도.전기.가스가 끊어진 암흑 속,국가 공권력의 공백상태에서도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베 경찰은『지진 발생 이후 이틀동안 지진에 따른 사고는 있었으나 강력사건등 일반 사건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베시민의 무서운 질서의식은 10년전 단 10시간의 정전동안 무장강도의 약탈로 무법천지가 됐던 뉴욕과 명백한 대조를이루었으며,이들이 바로 72년전 관동(關東)대지진 때 한국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피의 학살을 자행했던 그 핏줄인가 믿어지지않을 정도였다.
고베의 중심지 주오(中央)區에는 지진 발생 하루가 지난 18일 낮부터 부서진 가게들이 남은 생필품을 팔기위해 하나둘 문을열었다. 화재로 미처 비상식량과 구급약을 빼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쌀.버너등 당장 취사에 필요한 물품을 사려고 몰려들었지만역시 혼잡은 없었다.
고베시 전역에는 도로 파괴로 식량과 생필품의 반입이 전면 중단되었는데도 사재기나 값 올려받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피해를 입은 동네 사람들이 어제까지 바로 우리의 고객이었습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주인은 오히려「재고가 달려 충분히공급을 못해드려 죄송합니다」는 팻말을 내걸고 연신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자위대.경찰.소방대원.공무원이 총동원된 밤샘 구조활동도 침착하게 진행됐다.
시민들도 평소 훈련대로 정확히 따랐다.일부 일본언론들은 당국의 사전 방비 부재를 꾸짖었지만 그것은 그들 수준에서의 불만이었을 뿐 제3자가 지켜보기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때 고베를 마비시켰던 교통체증도 시간이 가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자가용을 이용해 밖으로 나오지 말아달라』는 거듭된 방송요청에 따라 이미 부서진 반쪽의 길이나마 숨통이 터졌다.오사카에서 고베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18일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구호식품과 식수를 실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달렸다.
[고베(神戶)=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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