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금 퍼주는 기초연금, 쥐꼬리 국민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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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보건복지부가 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4대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해 보고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팀을 만들어 국민연금 등 4대 연금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게 보고의 골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인 개혁 방안이 논의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선진사회로 향한 사회 안정망 확충 차원에서 현 연금제도의 보수가 필요하다는 데 우리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위한 땜질 식 개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결정되지는 않았다지만 이명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을 보면 새 정부의 연금 개혁 방향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당선인이 내놓았던 공약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하고, 기초연금을 새로 만들어 노후 보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의 지나친 혜택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상대적인 형평성 논란이 일었던 특수직 연금 개혁 방안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기초연금제 신설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 제도 개편은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국론 분열을 조장할 소지마저 크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공약대로 개혁안이 실행될 경우 기초연금 운영을 위해 2010년 20조원, 2030년 46조원, 2050년 50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도대체 그 돈을 어디서 충당한단 말인가. 설령 마련한다고 치자. 기초연금 운영을 위해 연금 수령액이 ‘용돈’ 수준으로 줄어들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원성을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공약대로라면 기초연금제 실행으로 현재 월 8만4000원 정도의 노인급여는 약 34만원으로 많아진다. 이에 비해 현재 ‘덜 내고 더 받는’ 성격의 국민연금은 평균 소득 20%를 ‘낸 만큼 받는’ 소득비례 연금으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평균소득의 60%를 지급받아도 노후 생계가 걱정되는 판에 그나마 20%도 연금보험료 불입액 내에서 되찾아가게 될 경우 그야말로 연금이라는 말 자체가 부끄러워질 정도다.

새 대통령에게 공약 이행은 정권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한나라당의 연금 개혁 공약은 분명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했다. 후보 때의 모든 공약이 새 정책으로 전환될 수는 없다. 잘못된 공약은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선택 기준은 매우 포괄적이다. 그러기에 당선인의 개인적 허물도 눈감았듯이 가능성이 모호한 일부 공약도 눈감았던 것이다.

인수위가 복지부 보고에서 연금 개혁 방향과 관련, 출총제 폐지와 같은 즉각적인 시행 결정을 내리지 않고 향후 과제로 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무엇보다 전체 국민의 생계가 걸린 연금 문제를 논의할 때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을 충분히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국론 분열을 사전에 방지하는 길이다.

어차피 여론수렴 과정에서 지적될 일이지만 연금 개혁의 방향은 적어도 세금 퍼서 남의 주머니 채워 주는 식은 아니어야 하며, 노후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명목뿐인 ‘푼돈’ 나누기 식의 국민연금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