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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교육파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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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대가 갈수록 세분화.전문화되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녀나 학교교육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는 1세기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자녀가 국민학교 상급학년이나 중학생쯤이 되어 개성과 소질이 드러날만큼 드러났는데도 부모들의 기대나 학교교육의 목표는여전히 만기총람(萬機總覽)의 대정치인,세상이 우러러보는 대석학(大碩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해묵고 묵은 교육문제의 한 뿌리다.부모의 자식에 대한큰 기대는 본능적인 것이다.따라서 자식이 대정치인이나 대석학이되길 바라는 기대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그러나 자식을 키우다 보면 한 뱃속에서 난 자식도 천차만별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그렇다면 이 천차만별의 소질과 개성이 십분 발휘되도록 진로를지도하고 교육하는 게 부모의 바른 도리며,학교교육의 목표일 수밖에 없다.그렇지만 현재의 학교교육은 그러한 부모의 깨달음마저싹부터 무질러버리고 오히려 자 녀에 대한 부모의 과잉된 획일적인 기대를 마냥 부풀려 나가고만 있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수학.국어만은 우리 국민이라면 필수적으로 갈고 닦아야할 과목이라고들 알고 있다.그러나 일류 요리사나 가수.미용사일지라도 이들에게 이들 과목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기본만 갖추면 충분한데도 우리의 학교 교육은 모든과목을 골고루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은 低평가하고 차별화해 전혀불필요한 열등감만 잔뜩 주입해 졸업시키고 있다.
사회는 모든 과목에 뛰어난 만능인도 물론 필요로 한다.또 만능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광범한 부문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야 적합한 직업분야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이런 인구는 모두 합해 기껏해야 10%남짓이다.90%가까운 인구는 자신의 소질이외의 부문엔 기본적인 소양만 가져도 충분히 자기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학자가 되려한다 해도 영문학을 하는데 뛰어난 수학적 이해력과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마찬가지로 수학자가 되는데영어와 국어과목의 성적이 반드시 우수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그러나 어떤 학자가 되려고 하든 모든 과목 을 골고루 잘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제도다.
우리는 엘리트시대의 사고방식,학문숭상 일변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엘리트의 양성,학자의 양성도 필요하지만 모든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학생 본인도,그의 부모도 원치 않는데 제도가 그것을 강요한다는건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적 불행이요,손실이다.교육제도의 불합리로 일류대 법대출신이 전문대에 다시 입학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대부분의 사람에겐 어떻게 하면 남다른 기 술과 재능을갖추어 직업적으로 성공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는 시대인데도 교육은 딴청을 부리고 있다.
기본적인 소양은 중학교까지의 교육으로 충분할 것이다.고등학교부터는 모든 학생에게 흥미가 없는 과목까지 일률적으로 강요할 이유가 없다.학문적 과목중심에서 벗어나 컴퓨터.용접.사진등 학교사정에 따라 가능한한 다양한 직업교육 과목을 마 련해 학생들이 일반과목과 똑같은 조건아래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고교부터 다양하게 특성화해야 한다.고교진학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되 다양한 고교를 만들어 그 학교 특성을 보고 진학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이렇게 된다면 당연히 대학교육의 내용과 입시도 달라져야 한다.사회의 엘리트,학자를 양성하는 소수의 연구중심대학과 직업교육 중심의 대학으로 엄격히 나눠 직업교육 대학에선 학생들의 취업희망과 사회의 실수요에 맞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소질.개성 살려줘야 대학교육은 대중화된지 오래다.4년제대학에만 고졸자의 33%가 진학하고 있고,전문대학까지 합치면 그 비율이 50%를 넘으며 졸업자중 절대다수가 그저 좋은 직장얻기를 원한다.이런 현실에서 모든 대학이 엘리트양성 교육만하고있는 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만능인을 기르려는 획일적이고 무개성적인 교육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염증을 내고 있는가.
현재 교육개혁이 추진되고 있긴 하나 미조정(微調整)으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교육제도의 근본을 바꿔놓을 기존 교육의「파괴」가 절실하고 시급한 상황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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