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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휴대폰 요금 내려라” “기업 자율에 맡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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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통신비 인하는 경쟁 촉진, 규제 완화, 기업 자율 등 시장 친화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정보통신부에 이달 중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인 휴대전화료 인하 안을 마련해 인수위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5일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인수위 사무실에서 최경환 경제2분과 간사는 정통부의 보고가 끝난 뒤 기자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리핑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시장 중심이란 거야,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거야?” “기업 자율에 맡긴다면서 이달 안에 획기적인 인하 안을 만드는 게 가능한가”하고 수군거렸다.

혼란을 더 부추긴 건 “이동통신 가입비와 기본료를 포함한 요금 체계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최 간사의 발언이었다. 통신업계는 “이통사의 고유권한인 요금제까지 정부가 좌지우지하겠다는 건 기업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신비 인하 안을 추진하는 인수위의 입장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이동관 대변인은 “취임 전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실현하겠다”고 말해 업계를 긴장시켰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상품 가격을 20%나 내리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자율 경쟁과 시장경제를 앞세운 당선인의 경제원칙과 맞지 않는다”며 통신업체가 반발하자 최 간사와 이 대변인 등 인수위 인사들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2일까지 “당장 내린다는 게 아니다”라거나 “참여정부처럼 요금 인하를 종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뒤집어졌다.

 최 간사는 4일 “인수위를 찾은 이통사 관계자들이 20% 요금 인하 방법을 찾아본다고 했다”고 말했고, 급기야 “통신비 인하 안을 이달 중 마련해 가능한 한 빨리 추진될 것”이라고 그 시기까지 못 박았다.

 이처럼 인수위가 오락가락 행보를 계속하자 통신업계는 “결국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논리에 시장경쟁 논리가 밀리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와 관련한 인수위 측 발언은 기업을 만났을 때와 언론을 만났을 때가 전혀 다른 뉘앙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원칙에 어긋나는 공약을 조급하게 밀고 나가다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우를 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익대 이광철 국제경영대학원장은 “소비자가 시장과 요금을 정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 메커니즘”이라며 “새 정부가 할 일은 강압적 요금인하가 아니라 통신산업에서도 이 같은 메커니즘이 건강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불필요한 규제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등 선진국은 정부가 규제를 풀어 통신시장을 자율 경쟁체제로 만들자 소비자에게 유리한 값싼 상품들이 쏟아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희수 박사는 “새 정부가 KT·SKT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없애면 통신요금은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수위 오락가락 발언

▶12월 30일=이동관 대변인 “취임 전에 통신비 20% 인하 공약 이행 노력”

▶12월 31일=최경환 경제2분과 간사 “통신비 인하는 자율적인 시장 기능에 맡겨”

▶1월 2일=박형준 기획조정분과 위원 “생활비 30% 절감 차원 통신비 적정수준 조절”

▶1월 4일=최경환 간사 “3일 통신업계 관계자들과 자율적 방법으로 20% 인하안 마련키로”

▶1월 5일=최경환 간사 “시장 경쟁 활성화로 국민 피부 와 닿는 인하안 1월 중 발표”

이나리·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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