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여러 주거형태 중 하나에 불과한데도 편리함 때문에 급속히 보급됐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웬만한 읍·면 지역까지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최근 몇 년간 아파트값이 폭등한 결과로 비싸기도 하거니와 집 한 채가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새 아파트를 분양받자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대개의 아파트가 선분양·후시공 방식으로 분양되고 있어 실물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파트는 대단위로 건설돼 공급되는 특성상 대중매체를 통한 분양광고나 모델하우스 전시 등의 전문적인 기법을 통해 분양된다. 그런데 분양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수요자로서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
실제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한 사람들은 분양광고나 안내책자에서와 본 것과 달리 아파트가 미흡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분양받는 사람이 내 집이 될 아파트에 기대를 크게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분양 회사가 분양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미래에 건축될 아파트의 강점을 미화하고, 반대로 취약한 부분은 잘
드러나지 않도록 광고한 것이 더 큰 원인이다.
분양광고와 실제 분양받은 아파트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문제가 법정으로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이때 분양계약서에 분양광고의 내용이 들어 있으면 분양받은 사람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 광고내용이 분양계약서에 없으면 입주자가 승소하기도 하지만 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산에 건설된 466세대 아파트의 일부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분양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부산지법은 지난해 11월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입주자들은 아파트 부근의 대단위 뉴타운 건설, 주변 근린공원 및 산책로 조성, 구름다리 육교 건설 등의 분양광고 내용이 이행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판결에서 “아파트 주변에 대규모 주거시설이 건설되고 공원이 조성될 계획 자체가 있었던 이상 건설·조성의 시기나 구체적 위치·면적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분양광고는 다소의 과장에 불과해 일반 상거래의 관행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볼 때 용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판시했다. 또 구름다리 육교는 모델하우스에 비치된 단지의 배치모형에 나타난 표현에 불과하므로 분양 회사가 구름다리를 건설해주기로 약속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해 6월 분양계약서에 표시되지 않은 분양광고의 내용 중 입주자가 어떤 것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기준을 제시했다(2005다5812). 판결에 따르면 분양광고의 내용, 모델하우스의 조건, 분양회사의 설명 가운데 아파트의 외형·재질·구조 및 실내장식 등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분양계약의 내용이 된다. 그래서 경기도 파주시 2944가구의 아파트 단지 내 온천, 원목마루 바닥재, 유실수 단지 및 테마공원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분양회사에 계약위반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 밖의 광고내용 중 도로 확장, 서울대 이전, 전철 복선화와 관련된 것은 사회통념상 건축회사나 분양회사가 이행한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분양계약의 내용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허위·과장광고로 불법행위가 성립돼, 이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여지는 있다고 덧붙였다. 또 아파트 주변에 4300여 기의 대규모 공동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분양회사가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은 기망(欺罔)행위가 된다고 보았다. 이 경우 공동묘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은 기망당한 것이 아니므로 몰랐던 사람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법원은 분양회사가 실제와 다른 허위·과장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광고를 믿고 분양받은 입주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리는 추세다. 하지만 분양광고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 재판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분양광고에 있는 내용을 분양계약서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모호한 분양광고에 대해서는 분양회사에 거듭 확인해두는 것이 안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