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씨티은행과 싸울 경쟁력 갖추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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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 발표는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다. 씨티에 한미은행 지분을 판 칼라일이나 제일은행, 외환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 론스타 등 그동안 국내 은행을 인수한 외국인은 모두 사모펀드였다. 회사 내용을 개선한 뒤 되팔아 매각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다. 반면 씨티그룹은 한국에서의 영업을 위해 한미은행을 인수했다. 이는 씨티그룹이 한국 금융산업의 장래를 그만큼 밝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푸르덴셜그룹의 현대투신 인수에 이어 씨티가 국내 은행을 인수함에 따라 다른 국제 금융회사들도 한국 투자를 본격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금융회사로서는 제2의 지각변동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외환위기 이후 호된 격변을 치르면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강화한 국내 은행들은 이제 세계 1위 은행과 정면 대결을 해야 한다.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한미은행을 합해도 국내 6위 규모에 불과하지만, 세계 최대 은행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등에 업은 거대 은행과의 한판 승부가 버거울 수도 있다. 최근 일각에서는 은행 매각 때 외국 자본이 국내 자본보다 우대받는 역(逆)차별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는 국내 산업구조상 불가피한 현상이다.

씨티가 한미은행 인수에 나선 것은 달리 말하면 국내 은행들이 그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충분히 파고들 수 있는 틈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이 본질적인 경쟁력 강화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다.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안전성을 최대한 강화하는 가운데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금융업의 본질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 당국에도 새로운 과제가 안겨졌다. 선진 금융기법을 내세우는 씨티그룹의 영업행태가 자칫 감독당국의 구태(舊態)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현실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과도기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은 감독 규정 및 행태를 선진화해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