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7.수령님 서거날 모두 점심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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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일성(金日成)이 죽은후「수령님」은 신(神)으로 올라가 있었다.전국 수만개의 동상은 신전(神殿)으로 변해 남녀노소의 예배장소로 그들의 복락을 기구하는 장소였다.
들꽃다발을 동상에 바친 후 기도하듯 묵상하는 사람들.
초저녁에 찾아가 새벽까지 울다왔다는 10대소녀도 있었다.
김일성 사망 2개월째인 지난해 9월8일 저녁,평양 만수대 언덕.북한내 3만7천개 동상중 가장 큰 金의 동상아래 계단에는 수천명의 주민들이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초생달아래 만물이 어둠속에 묻혀 깜깜한 가운데 동상만 서치라이트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잔잔한 장송곡이 울리자 대기했던 주민들은 우루루 동상쪽으로 물려갔다.
기자도 그 무리속에 서 있었다.
장송곡이 멎고 잔잔한 여자음성이 마이크에서 흘러나왔다.
『이제부터 위대한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묵상하시겠습니다.』 다시 조곡이 깔렸다.
무리들 속에서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줄부터 차례차례 대여섯송이로 말들어진 꽃뭉치를 동상아래에 바치는 헌화순서로 이어졌다.분위기가 너무 엄숙해 무섭기까지 했다. 이같은 행사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계속됐다.
자동차로 동상밑 길을 지나치며 볼 때마다 여전히 4천~5천명이 모여있었다.
2백여만 평양시민이 적어도 이틀에 한번꼴로 동원되는 것 같았다. 동상 주변의 옥류교와 개선거리는 물론 지하철 승객 대부분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시 방송국에서는 거의 1백%,김일성 회고 기록 테이프를 방영하며 그의「위대함」「인민사랑」을 강요했다.
김정일(金正日)의 이름은 단 한번 비칠뿐 이었다.
방송종료 직전 김일성의 초상화를 10초정도 비춘 뒤「김정일동지가 영도한 이후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크게 발전했습니다.」김일성을 한껏 높여 신적인 존재로 올려놓은 후「수령님이 곧 지도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사실 지방에서나 평양에서나 김일성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조선역사상 다시는 그런 인물 안나옵니다.』 『역사상 웰남(베트남)호지명(호치민)동지 서거때 세계 1백2개국에서 조문했다는데 수령님 돌아가시니 남조선을 뺀 전세계가 울었습니다.』 『7월8일 수령님 서거소식을 처음 알린 정오방송을 듣고 점심을 먹은 사람은 우리 인민중 단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이날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번 내지 방문에서도 확인된 사실이었다.
특히 장례식 당일엔『평양에서만 수십명이 졸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한 사람까지 있다』고 말한 관리도 있었다.한가지 중요한 것은 김일성시신이 안치됐던「주석부」를 공개해 전 인민군 병사들로 하여금 24시간 계속 참배케 했다는 사실 이다.
그래서 장례식이 늦춰졌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군부가 金의 시신을 직접 보고도 그 아들에게 총을 갖다 댈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된 아이디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오지에서 복무하는 갓 입대한 사병까지 모두 평양으로 불러 金의 시신을 직접 보인 것에서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북한 전역에는 김일성 사망후 두가지 구호가 곳곳에 들어섰다.
「위대한 어버이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김정일 시대를 빛내는 보람찬 투쟁에서 청년영웅이 되자.
」 구호에서도 두 사람을 동시에 올려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들 김정일은 아버지의 8자걸음과 글씨체까지 흉내내고 있다.
평양에서 만난 한 장령(장성)은『수령님이 남긴 업적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지도자 동지를 후계자로 삼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 북한당국은 김일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나머지「백일제」까지결혼식을 중지케 했다.
말로는 인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하나 분위기상 세포조직에서 지침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어떤 농부는『세상이 우러러 보는 수령님도 돌아가시는데 우리같은 사람은 살아서 식량만 축낼 뿐』이라며 자조적인 말까지 했다. 탄자니아 총리의 북한방문을 맞아 평양소년문화궁전에서는 어린이들의 축하공연이 있었는데 무용.합창.농악 등 화려한 무대가 막을 내리면서 화면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백두산 천지앞에 서있는 대형사진이 등장했다.
공연후 관중들 틈에 섞여 밖으로 나오는데 기자 뒤편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2명의 대화가 들렸다.
『하필 수령님 영상을 보여줘서 울게 만들어.』 『동무도 울었네? 나도 펑펑 눈물을 쏟았지.이야,참 가슴이 아프누나.』 아버지를 너무 높이올려 상대적으로 아들이 더 작아 보이는 줄은 아는지,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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