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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읍사(井邑詞) ○8 『그래,이리 들어와 인사 드리지.』 아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인사시켰다.
『김사장,우리 둘째예요.「뉴미디어 백제」의 사장이고 「아사달」의 일도 도와주고 있지요.』 서여사는 도서출판 외에도 뉴미디어 분야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분은 정길례여사.미인도를 그리고 계시지.고전에도 관심 많으시고….』 김사장을 마주 보기는 처음이다.갸름하고 군살 없는 얼굴.위로 약간 치켜진 눈꼬리와 굵고 진한 눈썹이 인상적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사진 모음에서 길례는 김사장과 비슷한 모습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오괴분(五塊墳)제4호 묘의 「일신도(日神圖)」.밤 빛깔 날개옷을 입은 해의 신이,까마귀 무늬가 박힌 햇덩이를 검붉게 그을은 팔뚝으로 들어 올리고 있는 그림이다.6세기의 벽화로 믿기지않을 만큼이나 붓자국이 생생했다.
단정하고 정한(精悍)한 생김새.이것이 북방계 한국 남자의 얼굴인가. 『고향이 북쪽이신가요?』 길례는 김사장과 서여사를 두루 향해 물었다.
『평양이에요.김사장 아버지는 더 북쪽 산골이고….어떻게 알았지요?』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으시네요.』 김사장이 언뜻 소년같은 표정을 지었다.청결한 남자 같았다.
『직감이 대단하세요.그래서 부탁인데….』 서여사는 탁자 앞에반듯하게 다가앉았다.업무를 대하는 자세였다.
『우리,일 좀 해봅시다.「정읍사」를 벗기는 작업이에요.나도 적극적으로 돕겠고,김사장도 뒷바라지 잘 해드릴 거구요.』 무슨얘긴지 얼른 파악이 안됐다.
『어떻게?』 『길례씨가 「정읍사」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글을쓰고,또 여주인공 미인도까지 곁들여 그려주면,우리가 책으로 펴내겠다는 얘기예요.』 『책을요? 제가요?』 길례는 웃었다.
『아무나 책 내느냐고 웃지 마세요.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이 책이니까요.다만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일 뿐이죠.길례씨는해낼 수 있어요.우리 고대사와 고대문학은 수수께끼 투성이에요.
여자들에 관한 대목은 특히 그래요.감춘 대목, 얼버무려진 대목이 너무나 많아요.이 의문들을 여자 자신의 손으로 광명천지에 끌어내 보자는 것이죠.「정읍사」의 정체를 밝히는 일에서 시작하고,차례로 한국 여성에 관한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짚어 나가는 책.어때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요? 글솜씨 걱정도 마세요.주부의 눈으로 보고 느낀대로 쓰는 것이 더 호소력 있는 글일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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