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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5.암시장 개한마리값 1년 봉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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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장마당」에는 고사리.닭.토끼.호박씨.약재.당파(양파).마늘등이 주종을 이루나 금지된 품목들인 입쌀.잣.밤.공업품(숟갈.가위등).수산물도 암거래된다.
현금거래지만 물물교환도 흔하다.거래가 금지된 물품일수록 가격은 비싸 개 한마리에 8백원,고등어.이면수 절인 것 한마리에 30원,가자미는 50원이다.
한달 평균 노임이 50~60원이고 보면 생선 한마리 값에 한달 봉급을 털어야 하기때문에 식탁에 오를 수 없다.
장마당에 나온 토끼.닭들도 주인과 함께 여간 고생이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 들고 튀는 아이들 때문에 특별관리를 해야하기때문이다.
당의 지시에 따라 책임지고 위탁사육하는 돼지도 지하 벙커에 갇힌 채 판자문을 자물쇠로 채워 놓았다.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도난방지가 이유인 것 같았다. 전회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북한 소년들의 절도는 어디에서나 골칫거리로 안전원(경찰)들도 손쓰지 못할 뿐더러 주민들이 잡아 넘겨도『배 고파 그런건데 적당히 타일러 보낼 것이지』라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는 것이다.
하루는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18세된 소년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피신해 왔다.밤중에 복면을 하고 석탄 한바구니를 몰래 담아 나오다 잡혀「죽도록 맞았다」는 것이다.
또 어떤 50대 부인은 당에서 맡겨 기르게한 돼지새끼 한마리를 밤중에 몰래 방안으로 안고와 이불을 뒤집어 씌워 밀도살했으나 고깃국 냄새를 맡은 이웃이 안전부에 신고해 잡혀 갔단다.
사흘간 두들겨 맞고 집으로 돌아온 그 주부는 결국 장파열 후유증으로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안전원들의 행패에 대항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후환이 두렵고「반동」낙인이 찍히면 본인은 수용소로 보내지고 가족들은 전기는 물론 배급도 못받아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산비탈 움막집으로 격리 수용되기 때문이란다.
함께 건너간 연길의 조선족 장사꾼「아주마이」는 자신이 산비탈격리수용소를 몰래 방문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자동차 짐칸(트렁크를 말하는 듯)에 숨어서 찾아갔더니 움막집의 친척은 이미 반쯤 죽어있었다고 한다.
들풀을 뜯어 연명할 정도라며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의 친척은 사소한 일로 반동으로 몰려 세대주(북한에서는 남편을 흔히 이렇게 부른다)는 수용소로 끌려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울면서 산비탈 움막집으로 격리됐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돼지새끼 밀도살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들의 신고 정신은 체질화돼 있다.
그런 면에서는 비정하리만치 잘 일러 바친다.『변방(국경지대)이 어느 방향이냐』고 묻는 젊은이를 신고한 중학생 또래의 소녀가 색테레비(컬러TV세트)를 상으로 받는 대신 그 젊은이는 탈출기도자로 몰려 평생 신세를 망친 일도 최근 있었 다고 한다.
유일한 시장격인 장마당에서는 중국 조선족들에게 인기있는 개구리 기름이 날개 돋친듯 팔리고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항암.정력제로 알려져 동면중인 개구리를 잡아 중국 조선족들에게 마리당 12~15원씩,㎏당 8천~9천원씩 팔고있었다. 개구리 뱃속에 낀 노란색 기름을 빼내 따로 팔기도 하는데 부피가 작아 매매가 잘 되는 인기 품목이다.
장마당에서는 미국 달러가 암거래되기도 하는데 1백달러에 9천5백~1만5천원까지 거래됐다.
평양에서의 공식환율이 달러당 2원11전임을 감안하면 암시장에서는 무려 50배에 거래되는 셈이다.
***○…… 화폐개혁에 쇼크 ……○ 1백달러는 15년간의 월급과 맞먹는 돈이다.
이처럼 달러가가 폭등하는 이유는 불안한 주민들의 심리적 원인도 있겠으나 92년에 실시한 북한의 화폐개혁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폐개혁에서 북한당국은 가구당 4백원씩만 새화폐로 교환해 줘 그동안 쓰지않고 푼푼이 모아둔 돈이 모두 휴지조각으로 변해 많은 주민들을 통곡케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화폐개혁이후 북한돈의 저축보다는 달러나 엔화와 교환,현금갖기에 더큰 관심을 갖게됐다는 것이다.
기자가 90년8월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보다 달러의 암시세는 두배이상 뛰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의 장마당 문화는 북한식「카더라 통신」의 진원지 역할도 하고 있었다.
아직 자본주의 사회처럼 활발한 거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모인 주민들은 물건과 식량구입을 위해 타지를 다녀와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귀엣말로 주고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을 드나드는 일부 조선족이나 중국인 장사꾼들이 조선「새이」(새아기.처녀)를 현지처로 삼아 재미를 보았다거나 자강도 어느 곳에선 반동분자 처형식이 있었는데 반동의 장본인은 동네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형이 집행됐으며,가족 들을 맨앞줄에 앉혀 가장(家長)의 말로를 직접 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처형된 사람의 시신을 1주일간 방치해 목맨 시신이 바람따라흔들흔들 매달려 있더라는 등의 수많은 소문들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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