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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뛰자2008경제] 올 지구촌 경제, 미국만 바라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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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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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후폭풍, 2위 미국 경제성장률 하락…’.

내로라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꼽은 ‘2008년 한국의 경제 위협 요소’ 1, 2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13개 민관 연구소 대표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꼽은 이들은 ‘내년 우리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정책과제’로도 규제 완화와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후폭풍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초 태평양 건너에서 발생한 부동산 위기가 올해 우리나라 성장의 발목을 잡는 주요 복병으로 떠오른 셈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올해 지구촌 경제는 미국만 바라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성경제연구소 정구현 소장은 “2000~2005년에는 세계 성장률과 미국 성장률이 거의 같이 움직였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으로 의존도가 예전보다 떨어졌다”면서도 “그러나 세계 경제의 60~70%는 여전히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올해 미국이 0.5% 이하로 성장한다면 세계 경제도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기지 위기는 ‘현재진행형’=미국 부동산 시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갇힌 모습이다. 지난달 말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의 신규 주택 거래는 전달에 비해 9%나 줄어든 64만7000건에 그쳤다. 이는 1995년 4월(62만1000건) 이후 약 12년 만의 최저치다. 당초 전문가 예상(71만5000건)을 한참 밑돈다.

FTN파이낸셜의 크리스 로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주택 수요 감소, 재고 물량 증가, 주택대출 연체 증가라는 삼중고에 허덕이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 불안은 소비를 위축시켜 올해 경기 확장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도 꽁꽁 얼어붙었다. 불안심리가 확산된 데다 에너지·식품 가격까지 상승해 미국인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1일 마스터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3일부터 12월 24일까지의 쇼핑시즌 동안 미국인들의 소매 구입(자동차 제외)은 전년에 비해 3.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6.6%)와 2005년(8%)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보석류 같은 고가품 매출은 1.9% 증가에 그쳤고, 랩톱 컴퓨터와 LCD TV 등 고가 전자제품의 판매 증가율도 2.7%에 불과했다. 로이터와 미시간대의 12월 소비자 기대지수는 2005년 10월 이후 최저치인 75.5로 떨어진 상태다.

◆2008년은 미국과 리커플링 시대=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모건스탠리 등은 “2008년은 재동조화(리커플링·recoupling)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 경제가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기존 ‘비동조화(디커플링·decoupling)’ 입장에서 방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충격이 지난해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면, 올해는 금융시장을 뛰어넘어 각국 실물경제에까지 본격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골드먼삭스는 내년도에 거시경제 분석 대상 38개국 가운데 26개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불과 12개국만 전년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 경제성장률도 당초 4.7%에서 4%로 하향 조정했다. ‘브릭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디커플링 주장을 뒷받침했던 골드먼삭스 짐 오닐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일본은 더 많은 리스크가 엉켜 있어 미국보다 빨리 경기가 둔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벌써 증시·채권 등 금융시장이 냉각되면서 인수합병(M&A)이 줄어들고 세계 주요국의 소비·투자·생산·건설 경기가 주춤거리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 타이 휘 동남아시아 책임자는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기 하강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추가 금리 인하 놓고 고민 중=올해 세계 경제의 시선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 버냉키는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급등하는 등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때마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세계 경제의 숨통을 틔워 줬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도 세계 경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세 차례 연속 이뤄진 FRB의 금리 인하 덕분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FRB가 30일 다시 한번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가·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중앙은행 입장에선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 물가는 오르고, 국제자금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CIBC 월드마켓의 애버리 셴필드 이코노미스트는 “통화정책이 거듭 완화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4%대로 뛸 수 있다”고 우려했다.

FRB 금리 결정의 시장 예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기금 금리선물’은 이달 FRB가 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가능성을 90%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FRB는 지난달 공개된 성명서에서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시장과 정책 당국이 느끼는 금리정책에 대한 온도 차가 그만큼 다르다는 방증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FRB의 연속적 금리 인하로 금리가 많이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 인하의 정책 효과는 처음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금리 인하 효과가 한계에 부닥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된다면 올해 세계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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