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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칼럼>관철동시대 16.88년 첫세계대회 1회전 전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최초의 세계대회,그러니까 제1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는88년 4월2일 도쿄(東京)의 일본기원에서 열렸다.멀리서 서로노려보고만 있던 세계 16강이 드디어「진검승부」로 맞붙었다.
한국은 조훈현(曺薰鉉)9단.서봉수(徐奉洙)9단,그리고 호조의장두진(張斗軫)6단이 출전했다.하나 張6단은 중국의 마샤오춘(馬曉春)9단에게 지고,徐9단은 린하이펑(林海峰)9단에게 패해 1회전에서 탈락했다.믿었던 曺9단도 일본 최강 고바야시(小林光一)9단에게 첫판에 꺾여버렸다.
「한국,1회전에서 전멸」의 소식은 행여나 했던 사람들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이 한번의 완패로 한국바둑은 시골의 낙방서생 신세가 됐다.호화스런 중일(中日)의 바둑파티를 훔쳐본지어언 10년,이제는 우리도 한번 일어서 보자며 푸른 꿈을 꾸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한국바둑이 모욕당했다며 잉창치(應昌期)배불참을 외쳤던 프로기사들도 멋쩍은듯 고개만 저었다.
후지쓰배 4강엔 이상적인 정법을 추구한다는 고바야시9단,화점혁명을 이끈 우주류 다케미야(武宮正樹)9단,대륙적 기풍의 이중허리 林9단,중국의 별 녜웨이핑(섭衛平)9단이 올랐다.우승은 놀랍게도 다케미야가 차지했다.
한때 「어리석은 다케미야」라고 불렀던 이 환상의 추종자가 모험적이고 로맨틱하기 이를데 없는 대세력바둑으로 맨 먼저 세계를제패했던 것이다.일본 바둑꾼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다케미야는 점잖게 화답했다.『앞으로는 내 바둑을 우주 류라 부르지 말고 자연류라 불러달라.』 자신이 두는 중앙바둑은 고집이나 파격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바둑의 본질이라는 엄청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다케미야가 9월3일의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기 직전 베이징(北京)엔 다시 세계의 고수들이 모여들었다.대규모 상금이 걸린 잉창치배가 88년 8월21일 개막된 것이다.
인민대회당.마오쩌둥(毛澤東)이래로 중국 정권의 수뇌부가 서열대로 앉아 국가적 회의를 열어왔던 이 거대한 홀에서 전야제와 대진추첨이 있었다.
상석엔 우칭위안(吳淸源)9단.應씨.섭9단,그리고 중국의 고위관리,두번째 자리에 중국팀,그다음에 일본과 한국팀이 배치됐다.
중일전쟁 직전 14세의 우칭위안은 닳고 닳은 슈사쿠(秀策)의대국집 한권을 들고 단신 일본에 건너가 불과 10여년만에 4백년 일본바둑을 완전히 쓸어버렸다.그 吳9단이 흰 눈썹의 청수한모습으로 5천년 중국바둑의 상징인양 중앙에 앉 아있었다.그 옆의 녜웨이핑은 이제 吳9단의 뒤를 이어 중국에 바둑종주국 자리를 회수해올 영웅이자 전사였다.중국은 예의에 어긋나는 자리배치를 통해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중국계 8명이 먼저 심지를 뽑았다.21일의 1회전은 이리하여중국계와 非중국계의 대결이 됐다.전야제에서 曺9단은 말했다.『고바야시와 다시 대결하면 설욕할 준비가 되어 있다.』사람들은 박수를 쳤다.그러나 그 누구도 조훈현을 우승후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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