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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 어떻게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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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궁중 예술의 집대성, 전통 공예의 총화-.

 국새와 그에 따르는 의장품엔 옥새전각장·소목장·매듭장 등 각 분야 최고 장인들이 정성이 들어있다. 기실 이쯤돼야 나라를 대표하는 도장이다. 의장품은 국새에 매다는 매듭인끈부터 보통(국새 내함)을 싸는 겹보자기, 보통을 넣는 인궤, 인궤를 올려놓는 소배안상, 국새를 올려놓는 인상 등 총 16가지에 달한다.

 지난해 6월 29명의 각 분야 대표 장인으로 ‘국새제작단’이라는 드림팀이 구성됐다. 중요무형문화재 22호 매듭장 김희진(74·여)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 설석철(83) 선생 등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만 10명이다.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까지 합하면 총 13명의 문화재급 장인들이 실비만 받고 나섰다. 김희진 선생은 “난 보수를 말해본 적도 없다. 국가의 큰 일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한평생 장인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선 영광”이라고 말했다.

 전체적 디자인은 민 단장이 했다. 옥새전각장들에게만 구전된다는 비법인 ‘영새부 ’, 1876년(고종 13년)의 『보인소의궤』 등을 참고해 직접 의궤를 그렸다. 자수 모양, 실의 색, 치수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담았다. 조선시대에는 도화서 화원이 기록하던 것을 민 단장이 옛 방식대로 그렸다. <그래픽 참조>

 ◆국새의 멋과 철학=국새 자체만 해도 인뉴는 금속공예, 인장은 서예·전각의 최고 솜씨가 발휘된다. 나라를 대표하려면 멋 뿐 아니라 철학도 담아야 한다. 인뉴는 인문의 가로 세로 규격과 똑같이 높이 99mm다. 태평성세를 뜻하는 길조 봉황이 구름 위에 내려앉는 순간을 포착했다. 힘찬 두 다리를 강조해 역동성을 살렸다. 봉황의 꼬리 날개는 원래 두 개다. 하나는 아래서 위로 치켜들고 다른 하나는 아래를 향해 오므렸다. 민 단장은 그 사이에 꼬리 날개까지 넣었다. “두 날개 사이의 작은 꼬리 날개는 국민, 즉 봉황이라는 태평성세의 새가 보듬어 담은 대한민국 국민을 구상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이 꼬리날개는 도장 찍는 사람의 손이 아프지 않게 힘을 받치는 기능도 한다.

 국새는 단 한 벌뿐인 나라 도장이다. 헌법 공포문 전문, 훈·포장, 중요 외교문서 등에 찍는다. 1년에 1만5000번∼1만8000번 가량 찍기 때문에 튼튼해야 한다. 인뉴는 17K, 금의 순도를 높여 화려한 금빛을 냈고, 빨리 닳을 우려가 있는 인면은 13K로 내구성을 높였다.

 ◆전통 명품 기술의 집대성=이번에 참여한 명장들은 명품을 만들려면 좋은 재료를 만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나무, 가죽, 종이 등 최고로만 가려 썼다.

 의장품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나무다. 전부 80년 이상된 고재(古材)를 갖다 썼다. 오랜 세월을 견뎌 검증된 나무여야 여름·겨울의 습도 변화에도 뒤틀림 없이 한결같을 수 있다. 국새를 보관하는 내함인 인궤만 해도 200여년 된 전주의 한 사찰이 폐사되는 과정에서 챙긴 오래된 춘양목을 다듬어 썼다.

 이 인궤에는 특이하게도 어피(魚皮)가 쓰였다. 한반도가 삼면이 바다란 점에 착안했다. 칠피 명장 박성규(55)씨가 두 달간 전국의 어시장이란 어시장은 다 찾아 헤맨 끝에 찾아낸 120cm 길이의 거대한 철갑상어의 가죽이다. 박 명장은 “철갑상어 가죽은 우툴두툴한 비늘이 많아 웅장하고 용맹스럽다”며 “인궤 뚜껑 전체를 가죽 한 장으로 마감해야 해서 적당한 크기의 상어를 찾는데 애를 먹다 부산 자갈치 시장을 거닐던 중 횡재하듯 눈에 띈 놈이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석. 일종의 방석으로 국새를 인상 위 복건에 놓을 때 까는 받침이다. 한지 전지 200장을 재단해 1800겹으로 배접했다. 한 장 한 장 풀로 붙인 뒤 말리고 다듬이질하기를 반복한 것이다. 종일 일해야 네 장밖에 붙일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의 반복이었다. 5개월간 꼬박 한지 붙이기를 반복한 전주 기전대 문화전통학과 김혜미자(67·여) 교수는 “한지로 만든 석을 썼다는 기록만 갖고 시작한 일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며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란 말이 있듯 한지로 만든 방석 속은 솜이나 천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 오래 가도 뒤틀리거나 뭉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홍규 단장은 “최고의 장인들이 최고의 재료로 최선의 정성을 다했다. 중요한 일을 하느라 제작단 모두가 먹는 것, 행동하는 것도 삼갔다. 정성도 문화재급”이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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