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국민을 행복하게 한 임금, 세종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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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PD를 꿈꾸며 방송사에 몰려오는 젊은이들이 내세우는 거룩한 목표는 대충 예측이 가능하다. 이런저런 변설을 쏟아내지만 결론은 하나. 시청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을 돌려보내는 대답 역시 관성적이다. “굳이 PD가 못 돼도 시청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은 많다. 식당에서 일하더라도 PD 마인드를 버리지 않으면 성공한다.”
 
PD 마인드란 무엇인가. 아름답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순을 요령과 강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분야마다 전문가를 초빙하고 그들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일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반대하는 사람을 꾸준히 설득하고 마지막 순간에 완성된 작품으로 그들의 박수를 이끌어내야 한다.

PD로 성공하려면 적어도 4개의 배(ship)를 갈아타야 한다. 멤버십·파트너십·프랜드십, 그리고 리더십이다. 먼저 일정한 기준점을 예비하여 목표그룹의 멤버가 되어야 한다. 그런 후 실력을 보유한 자의 인정을 받아 그와 파트너가 돼야 한다. 파트너와 친구의 차이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익을 나누면 파트너지만 슬픔까지 나눈다면 그들은 친구 사이다. 문제는 친구와 리더의 차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친구가 되지만 좋은 사람을 ‘만들면’ 리더가 된다. 친구는 친구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되지만 리더는 혼신을 다해 친구의 꿈을 이루어 주어야 한다.

KBS 새해 첫 주말역사극의 주인공은 조선 4대 임금 세종이다. 세종은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빛나는 PD 마인드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창작리스트는 일련번호를 매겨야 하지만 아이디어와 추진력에서 으뜸은 바로 한글이다. 이 ‘작품’의 기획 의도는 훈민정음 서문에 간결하게 나와 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백성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펼칠 수가 없다, 이것이 가슴 아파서 새로 글자를 만든다, 쉽게 익혀 나날이 사용함으로써 편안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통의 리더십, 창조의 리더십이다. 하지만 이 가상한 프로젝트를 반대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감히 ‘큰’ 나라 중국의 한문에 대항(?)한다는 건 조선왕실 ‘양심수’들의 세계관에 비추어볼 때 망극한 처사였던 것이다. 그들의 명단은 드라마 중반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은 그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조선의 시청자는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세종이 한글로 직접 지은 시가 ‘월인천강지곡’이다. 하늘의 달은 하나지만 천 개의 강을 비춘다는 뜻이다. 대권을 꿈꾸며 선거에 뛰어든 후보자들이 내세운 목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굳이 대통령이 못 돼도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은 수없이 많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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