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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유통이것이달라져야한다>2.영세소매업체의 현대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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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도봉구 쌍문동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이기철(李基喆.41)씨는 연초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가게를 계속해야 할 것인지,아니면 업종을 바꿔 다른 일을 해볼 것인지 신정연휴내내 부인과 의논해봤지만 별 뾰쪽한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李씨가 이 골목에서 장사하기 시작한 것은 15년전부터.
처음 시작할때는 두아이 뒷바라지 하면서도 많지않은 돈이나마 저축도 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주위에 들어선 다른 가게도 문제지만 인근 상계동 아파트단지에백화점.할인매장등이 들어선 이후 매상이 크게 준 까닭이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부터 가게문 여는 시간을 늘려봤지만 힘들기만 할뿐 마찬가지였다.
그러던차에 지난해 12월 자기네 옆에 있던 화장품가게가 점포를 정리하는 것을 보고는 일손이 잡히지않아 이 궁리 저 궁리를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경우는 비단 李씨뿐이 아니다.전국중소상인연쇄점연합회 남용우(南龍祐)전무는『국내 대부분의 소매점이 구멍가게 수준으로업주들이 李씨와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현재 국내 소매업체 숫자(통계청조사,93년7월1일기준)는 75만8천2백20개.이들 업체 종사인원은 1백43만2천5백30명,연간판매액은 57조2백68억원으로 업체당 평균 종사인원 1.
9명,평균판매액 7천5백21만원꼴이다.
특히 전체 업체의 절반에 가까운 36만9천37개업체(48.7%)가 종업원은 물론 가족중에서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1인 사업체이고,68.8%에 해당하는 52만1천4백14개 업체는 연간 매출액이 평균 2천1백98만원에 불과하다.
마진율을 20%로 잡아 따져보더라도 연간 수입금액 4백39만6천원,월평균수입 36만6천원 밖에 안된다.
한편으로는 서구식 대규모 할인판매점등 신업태가 들어와 가격파괴현상을 주도하는가 하면 기존 업체와 서비스경쟁을 벌이고 있는가운데 국내 유통업체는 이처럼 영세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의 허종기(許宗基)전무는『영세한 국내유통업체들이 살아남는 길은 조직화.협업화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개별업주 차원에서 규모를 키우고 매장을 현대화하는 것도 시급하다.하지만 대자본과 경쟁하기 위해선 개인 자영업주들이 서로 힘을 모아 공동의 물류집배송단지 건립및 창고공동화사업등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는『E마트나 프라이스클럽등 초현대식 대형 할인매장이 등장해치열한 고객유치작전을 벌이고 있는데 메이커에서 도매점.대리점등을 거쳐 소매점에 이르는 물류개념으론 이들과 경쟁할수 없다』면서 물류집배송단지사업이나 창고공동화사업등으로 영 세소매업체들의물류비용을 줄일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영세 유통업주들이 자구(自救)의지를 지녀야 함은 물론이다.
골목길 주민들에 대한「안면장사」로 생계나 유지한다는 식으로 임해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정부의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공동의 물류사업과 관련한 금융.세제지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柳秦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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