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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통신] 문재인 前수석의 빈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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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재인 전 민정수석은 얼마 전 사퇴한 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인 렉스턴을 몰고 강원도 고성으로 떠났다.

친동생처럼 가까운 이호철 민정비서관조차 "통화는 한번 했지만 강원도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겠다"고 했다.

文전수석은 여러 모로 특이하다. 면도하고 넥타이 매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민정수석 당시에는 그것도 큰 스트레스였을 거라고 한다.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10여년 한 뒤 그는 두달간 티베트로 휴가 여행을 떠났다. 그에겐 링컨보다 더 하얗고 긴 턱수염이 자란다고 한다. 티베트 생활 한달 만에 히말라야 설산(雪山)의 도사처럼 흰 수염을 나부끼며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지인들은 "요즘 '자연인 문재인'의 사진 한 컷을 찍으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부산에서 '별봐라 산악회'를 조직, 금정산 야간산행을 즐길 정도로 산을 사랑했다. 웬만한 들꽃.들풀 이름은 식물학자 뺨칠 정도로 잘 안다.

특전사 수중폭파조 출신인 그가 아무런 장비 없이 바닷물에서 해삼과 물고기를 잡아가지고 나온 기억을 여러 명이 지니고 있다. 수줍음도 많이 탄다. 그가 부산의 대선본부장 시절 중앙당에 공식 지원금을 요청하는 말을 꺼내는 데 30분 이상이 걸렸다는 한 여당 의원의 얘기도 있다.

'자연인 문재인'의 민정수석 생활은 썩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수석 부속실의 여직원은 지난해 슬그머니 두명으로 늘어났다. 거의 매일 밤 11시 야근으로 여직원 건강이 문제가 돼 2교대로 간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문재인 식 원칙주의 민정수석의 역할이었다.

현 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경남고 출신인 文수석과 이호철 비서관의 동문은 한명도 없었다.

동문들의 볼멘 소리가 나왔다.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다.

고교 동기인 고위 공직자가 文수석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다. 지난 1년간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 설산에 있는 상태로 세상을 내려다 본 것일까.

측근 비리와 관련된 야당의 집중포화는 물론 여당 일각의 불만도 거셌다. "도대체 우리가 정대철 대표, 최도술 비서관과 의원들의 검찰 수사를 신문 보고 알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도 "정보가 도통 돌지 않아 원활한 정무기능이 어렵다"는 푸념이 나왔다. 인사청탁.민원이 거의 차단된 게 핵심이었다.

이런 文전수석의 빈자리가 어떻게 채워질지 사뭇 궁금하다. 집권 초 두 사람의 약속대로 이호철 비서관은 동반사표를 냈었다. 그는 "호철이 니는 당분간 더 있그라. 니도 나가면…"이라고 했다. 李비서관이 "나도 몸이 안 좋다"고 하자 "미안하다"고 했다. 대통령을 걱정한 것 같다.

그가 떠난 민정수석실은 지금 "기력을 좀 회복한 뒤 가자"며 당분간 정시퇴근, 보고서 중단 조치를 취하고 있다.

많은 논란, 현실적 손익계산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식 원칙주의의 골간은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훈 청와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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