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 고교생 5천여명 한글 배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이번에 새로 개정판을 냈어요. 문자.발음.문법.회화.어휘집이 있어 교재로 매우 적합하다고 자부합니다. CD를 포함해 가격은 1천5백엔(약 1만5천원)이에요."

이달 초 일본 혼슈 남부 돗토리(鳥取)현 미사사(三朝)초(町) 종합문화홀. 50여명이 책상에 앉아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책을 들고 열심히 뭔가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오사카 지역 고교의 한글 교사 10여명이 만든 교재 '스키야넹 한글'이었다. '스키야넹'이 '좋아요'란 뜻이니까 '사랑해요 한글'쯤 된다.

책을 만든 좌미화자(左美和子.여) 사노(左野)공고 교사는 "교재가 따로 없어 한국 대학의 외국인용 한글 교육 교재를 활용해오다 3년 전 실정에 맞는 교재를 만들었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左교사는 재일동포 3세지만 '한글 사랑' 때문에 일본식 이름도 한글로 읽는다. 그런 동포들이 꽤 늘고 있단다.

이어 마이크가 옆으로 건네지면서 "한글을 접한 뒤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한국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학생이 늘었다" "한글 만화.비디오.노래를 통해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의 경험담.조언이 잇따랐다.

일본 전국서 모인 이들은 일본 고교의 한글 교사들이 1999년 만든 '한국조선어 교육 네트워크' 소속 회원들. '네트워크'가 돗토리현.재단법인 국제문화포럼.주일한국 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처음 개최한 '일본 고교에서의 한국어 교육 세미나' 겸 연수회에 참석 중이었다. 걸음마 단계이지만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한글 교육 붐'을 상징하는 행사다.

'네트워크'사무국 운영자인 오구리 아키라(小栗章) 국제문화포럼 수석 프로그램 책임자는 "73년 효고(兵庫)현과 히로시마(廣島)현의 고교에서 처음 한글 교육이 시작됐는데 지금은 약 2백개 고교(전체의 4%)에서 학생 5천여명, 4년제 대학 3백여곳(전체의 50%)에서 대학생 3만여명이 한글을 배운다"고 말했다.

에이메(愛媛)현립 신니하마미나미(新居浜南)고교의 마나베 가즈토(眞鍋和人)교사는 "전엔 한국 역사공부가 목적이었지만 양국 문화교류가 늘면서 한국 알기를 위해 배우는 학생이 많다"며 "한국드라마 '겨울 소나타'가 지난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뒤 수강 희망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회원도 2년 전 80여명에서 지금은 1백50명으로 늘었다. 이 중 일본인이 80여명이다. 한글 전공자도 있지만,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연세대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과정의 신조 후토시(新長太)씨는 "영국에서 어학 연수를 받다 한국 친구를 만난 뒤 관심이 생겨 교사를 그만 두고 5년 전 한국서 어학연수를 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는 올해 교사들의 한글교육 경험.방법론을 조사한 자료집을 펴낼 계획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돗토리현 교육위원회는 지난해 일본 고교생에게 한국의 고교생활.지역.문화.역사.경제 등을 소개하는 '만남, 교류, 한국에의 여행'이란 1백31쪽 분량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오사카부는 올해 한글 교재를 펴내기로 하는 등 한글 교육에 관심을 갖는 광역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주일 한국문화원도 지난해 2월 '말해보자 한국어'콘테스트를 여는 등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글 교사들의 여건은 어렵다. 가나가와(神奈川)현립 기시네(岸根)고교의 야마시타 마고토(山下誠)교사는 "주당 배정된 한글 교육시간이 적어 다른 과목과 겸임하거나 비상근하는 강사가 많다"며 "신분이 불안정해 문제"라고 말했다. 나가사키(長崎)현립 쓰시마(對馬)고교의 고지마 미키(小島美紀.여)교사는 "학교가 외딴 섬에 있어 관심 많은 한국 영화배우.노래 등에 관한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고교에서의 한글 교육방법론'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교사.학생들 설문조사를 위해 참석했다는 그는 "그래도 외국인을 위한 한글 교육방법론 연구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나은 것 같다"고 자랑했다.

돗토리현=오대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