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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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8월이 되자 서울은 텅 빈 도시같았다.호프집의 손님도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일이 덜 힘들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서울에 남은사람들은 신문에 난 해수욕장의 사진을 보면서 서울이야말로 인간이 붐비지 않는 최적의 피서지가 됐다는 말로 서 로를 위로하고는 하였다.
내 생활도 어느덧 그런대로 질서가 잡혀가고 있었다.10시반쯤에 일어나서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밥을 먹고(브런치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나긋함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장정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나 헤밍웨이의 소설을 뒤적이다가 일터 로 나가는 거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진포로 피서를 간다고 했지만 나는따라가지 않았다.그분들을 따라 나서서 즐거운 시간 갖기란 그야말로 한여름에 눈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을 터였다.하여간 삼박사일 예정으로 피서여행에 나섰던 부모가 「나홀로 집에」를 만끽하려던 내 일정을 망가뜨리며 하루만에 집으로 돌아온 건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집에 돌아온 두 분의 표정은 엄숙했다.떠나기 전날 신기할만큼들떠서 무슨 짐을 어떻게 싸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어머니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날이 어두워져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집에서 옷만 갈아입고 곧 바로 다시 외출해 버렸는데 어머니에게 내가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어머니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하기야 동반여행이란 왕왕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십상인 거라고 어느 책엔가에도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에 집에 들어왔다가 몇시간 눈을 붙이고는 아침 일찍 낚시를 떠났다고 했다.그날 우리집에는 두 통의 우편물이 배달됐는데 하필이면 어머니가 편지통에서 그것들을 꺼내오셨다.하나는 소라의 것이었는데 시가 있었고 피에스가 있었 다.피에스의내용인 즉 용호도에 오면 먹고 자는 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초청의사를 밝힌 거였다.
나머지 하나가 문제의 내 1학기 성적표였던 거였다.이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성적표가 하루만 일찍 도착했어도 아니면어머니 아버지가 예정대로 여행을 즐기고만 돌아왔어도 이런 최악의 사태는 피해갈 수 있었을 거였다.성적표의 내 용이야 보나마나 뻔했다.
마침내 어머니가 나를 안방에 불러들였다.화진포에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때문에 짜증났던 일,여관과 음식값이 터무니없는 바가지 요금이어서 화가 치밀었던 일,심지어는 아버지가 예산을 세워서 가지고 갔던 돈이 실제로 1박2일 분밖에 안 되는 액수였던 것까지를 모두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들었다.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이해했다.나는 어머니의 야단을 다 듣고 또 아무 변명이나 항변도 하지 않았다.분명하게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나 역시 그즈음의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던 거였다.
게다가 다음날은 더한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내가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발각당하고 만 거였다.어머니는 징그러운 새끼라고만 그러고 더 말하지는 않으셨다. 나는 다음날 호프집에 일을 쉬어야겠다고 알리고 집을 떠났다.나는 배낭을 꾸려서 메고 구례를 향해서 떠났다.윤찬이 타다가 떨어졌다는 천일암이라는 암벽에 도전해보기 위해서였다.나는 윤찬에게 전화를 걸어 천일암에 대해서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이 여행을 마무리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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