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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제3의 길’은 언제나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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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당선자 당선의 제1 유공자로 흔히 노무현 대통령을 꼽는다. 노 대통령에게 넌더리가 난 국민이 “이번에는 꼭 정권을 바꾸겠다”고 일찌감치 결심을 굳혔다는 뜻에서다. 대선 결과를 놓고 역사의 시계추가 좌에서 우로 대이동했다는 평가도 한다. 일리 있는 주장들이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본인의 말처럼 ‘좌파 신자유주의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협조해 이라크에 파병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이는 정권을 좌파라고 단정하는 건 어딘가 어색하지 않은가.

더구나 2002년 대선에서,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총선에서 몰락의 위기에 전전긍긍했던 건 한나라당이요 보수 우파였다. 그게 불과 5년 전, 3년8개월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 짧다면 짧은 기간에 국민의 이념 노선이 진보에서 보수로 확 기울었다고? 522만 표라는 역대 대선 최다 표차가 날 정도로?

선거는 과거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정동영 후보는 불리한 여건에서 출발하기는 했다. 노무현 색깔을 빼려고 천신만고 끝에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었건만 국민은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런 참패는 피할 수 있었다. 5년 전 대선에서 그들이 승리한 이유를 되새겼더라면, 국민이 던진 메시지를 망각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메시지는 바로 ‘변화’였다.

좌파와 진보는 변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몰락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들의 선거 전략은 ‘후보 단일화’ 하나였다. 그들의 전술은 네거티브 공세 일색이었다. 국민의 시선은 미래를 향해 있는데, 그들은 과거에 연연했다. 후보 단일화는 1997년 DJP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이미 익숙해진 메뉴였다. 범여권이 각개약진 후 또다시 단일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국민은 1, 2년 전부터 읽고 있었다. 그들은 DJ와 백낙청·함세웅씨의 지도 노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신선한 구석 하나 없고, 정치적 상상력도 빈곤하고, 여기에 자기 희생마저 없는데 국민이 감동할 리 없다.

민노당도 똑같은 이유로 참패했다. 그들의 노선과 전략은 5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노총만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좌파=친북’이란 인식의 한계에 얽매여 있었다. 원내 제3당이란 작은 결실에 안주했다. 신당이나 민노당은 ‘사람 중심의 경제’를 내세운 정치 신인 문국현 후보가 5% 넘게 득표한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적어도 그는 대선 과정에서 미래의 패러다임을 얘기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시장경제와 경쟁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우파다. 그렇지만 그는 과거의 보수가 아니다. 그는 선진화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실용주의를 접목시켜 ‘제3의 길’을 국민에게 제시했다. 그래서 87년 이래 지속됐던 ‘보수 대 진보’ ‘민주화세력 대 반민주화세력’의 대결 구도를 ‘이념정치 대 실용정치’의 대결 구도로 바꾸어 놓았고, 그것이 주효했다.

좌파와 진보는 지금 존망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들의 가치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한 그들의 행태가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권력에 취해 자기 혁신과 자기 성찰을 포기한 순간부터 진보는 더 이상 진보일 수 없다. 진보의 껍질을 쓴 기득권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 좌파가 살 길도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제3의 길을 찾아내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친노세력이나 자주파(NL계)를 배제하는 인적 청산으로 끝낸다면 아직 위기의 강도를 체감하지 못한 것이다. 치열한 고민과 노선투쟁을 통해 새 길을 찾지 못하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