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문득 옛날 얘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서예’ 또는 ‘글씨’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민담이다. 한 가난한 서생(書生)이 굶주림에 지쳐 꾀를 하나 냈다. 고을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좋은 글씨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명필이라 칭하며 무턱대고 찾아갔다.
한국 서예 다시 보기
사랑방에 머물며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자고 나니 대접받은 만큼 글씨를 내놓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벼루가 적당하지 않다, 붓이 손에 안 익었다, 며칠은 지나갔지만 핑계도 한계가 있는 법. 서생은 별별 궁리 끝에 도망갈 구멍을 찾지 못하자 결국 종이 앞에 앉았는데 없던 재주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가 있나. 붓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던 그는 눈을 감고 한 일(一)자 한 자를 그은 뒤 벌렁 쓰러져 그대로 숨지고 말았다.
재미는 여기부터다. 우연히 서생의 글씨를 본 감식가가 무릎을 치며 감동했다는 것. “한 인간이 마음을 비우고 혼을 바쳐 쓴 명작”이라는 설명이다. 부자는 이 걸작을 자신의 처소에 두고 늘 바라보며 심신 수양에 애썼다고 한다.
서예에 뜻을 두었던 분은 아시겠지만 서실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한자가 한 일(一) 자다. 쉬운 듯하지만 가장 어렵다고 볼 수도 있다. 여백 또는 공백이 좀 많은가. 한 호흡으로 공간 한 가운데 띄우는 단순 필획은 쓰는 이의 공력을 엿보게 한다. 채우기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려움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민담이다.
다른 전시에 비해 유달리 대작이 많은 이번 특별전에서 단연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글씨는 ‘각고(刻苦)’다. 높이 164cm 크기이니 사람 키만 하다고 보면 된다. 빗자루처럼 커다란 붓을 두 손으로 쥐고 집중해서 글씨를 쓰는 우암(尤庵) 선생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우암은 이 글씨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주 선생(朱熹를 높인 말)이 아들을 공부시켜 타관으로 보낼 때에는 ‘근근(勤謹:부지런하고 삼감)’ 두 글자로 경계하였고, 선생이 임종시를 당해서는 제생들에게 ‘견고각고(堅固刻苦:뜻을 굳게 갖고 열심히 노력함)’ 네 글자를 당부하였다. 이 전후 여섯 글자야말로 어찌 후학들이 죽을 때까지 가슴에 새겨둘 것이 아니겠는가.”
‘각고’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긴 우암 선생의 일생은 도학자로서 바르고 곧은 외길이었다. 우암의 아저씨뻘 되는 동춘당(東春堂) 송준길(1606~72)과 함께 ‘양송체(兩宋體)로 널리 알려진 그의 글씨는 인격 수양과 연결돼 있어 보는 이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 서법(書法)은 심법(心法)이니 글씨는 곧 마음의 표현이다. 한 일(一)자 한 자에 목숨을 바친 서생의 일화는 허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대자서(大字書:큰 글씨)와 함께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우암의 또 한 폭의 마음 글씨가 ‘유일직자(惟一直字)’다.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고 성인을 낳고 만사에 대응함은 오직 곧을 직(直) 한 글자일 뿐이다”라는 뜻을 담았다.
출품된 우암의 글씨 가운데 ‘각고’와 ‘유일직자’ 두 점을 가슴에 품었다면 2008년을 여는 다짐으로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