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바로 그 사람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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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18면

우암 송시열의 큰 글씨 ‘각고(刻苦)’. ‘뜻을 굳게 갖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을 담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문득 옛날 얘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서예’ 또는 ‘글씨’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민담이다. 한 가난한 서생(書生)이 굶주림에 지쳐 꾀를 하나 냈다. 고을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좋은 글씨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명필이라 칭하며 무턱대고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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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에 머물며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자고 나니 대접받은 만큼 글씨를 내놓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벼루가 적당하지 않다, 붓이 손에 안 익었다, 며칠은 지나갔지만 핑계도 한계가 있는 법. 서생은 별별 궁리 끝에 도망갈 구멍을 찾지 못하자 결국 종이 앞에 앉았는데 없던 재주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가 있나. 붓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던 그는 눈을 감고 한 일(一)자 한 자를 그은 뒤 벌렁 쓰러져 그대로 숨지고 말았다.

재미는 여기부터다. 우연히 서생의 글씨를 본 감식가가 무릎을 치며 감동했다는 것. “한 인간이 마음을 비우고 혼을 바쳐 쓴 명작”이라는 설명이다. 부자는 이 걸작을 자신의 처소에 두고 늘 바라보며 심신 수양에 애썼다고 한다.

서예에 뜻을 두었던 분은 아시겠지만 서실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한자가 한 일(一) 자다. 쉬운 듯하지만 가장 어렵다고 볼 수도 있다. 여백 또는 공백이 좀 많은가. 한 호흡으로 공간 한 가운데 띄우는 단순 필획은 쓰는 이의 공력을 엿보게 한다. 채우기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려움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민담이다.

이형부(1791~?)가 그리고 쓴 화첩 ‘화양구곡도’ 중 제10곡. 화양구곡(華陽九曲)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며 공부에 힘쓰던 산림을 가르킨다.

다른 전시에 비해 유달리 대작이 많은 이번 특별전에서 단연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글씨는 ‘각고(刻苦)’다. 높이 164cm 크기이니 사람 키만 하다고 보면 된다. 빗자루처럼 커다란 붓을 두 손으로 쥐고 집중해서 글씨를 쓰는 우암(尤庵) 선생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우암은 이 글씨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우암 송시열의 ‘유일직자(惟一直字)’.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고 성인을 낳고 만사에 대응함은 오직 곧을 직(直) 한 글자 뿐’이라는 뜻.

“주 선생(朱熹를 높인 말)이 아들을 공부시켜 타관으로 보낼 때에는 ‘근근(勤謹:부지런하고 삼감)’ 두 글자로 경계하였고, 선생이 임종시를 당해서는 제생들에게 ‘견고각고(堅固刻苦:뜻을 굳게 갖고 열심히 노력함)’ 네 글자를 당부하였다. 이 전후 여섯 글자야말로 어찌 후학들이 죽을 때까지 가슴에 새겨둘 것이 아니겠는가.”

‘각고’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긴 우암 선생의 일생은 도학자로서 바르고 곧은 외길이었다. 우암의 아저씨뻘 되는 동춘당(東春堂) 송준길(1606~72)과 함께 ‘양송체(兩宋體)로 널리 알려진 그의 글씨는 인격 수양과 연결돼 있어 보는 이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 서법(書法)은 심법(心法)이니 글씨는 곧 마음의 표현이다. 한 일(一)자 한 자에 목숨을 바친 서생의 일화는 허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대자서(大字書:큰 글씨)와 함께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우암의 또 한 폭의 마음 글씨가 ‘유일직자(惟一直字)’다.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고 성인을 낳고 만사에 대응함은 오직 곧을 직(直) 한 글자일 뿐이다”라는 뜻을 담았다.

출품된 우암의 글씨 가운데 ‘각고’와 ‘유일직자’ 두 점을 가슴에 품었다면 2008년을 여는 다짐으로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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