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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 피살 파키스탄 곳곳 '무정부 상태'… 군에 발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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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키스탄 군인들이 부토 전 총리가 폭탄 테러로 사망한 하루 뒤인 28일 카라치의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이날 파키스탄 곳곳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카라치 AFP=연합뉴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암살된 다음 날인 28일 파키스탄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부 하이데라바드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처음으로 발포해 5명이 다쳤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대통령 궁을 비롯한 주요 시설 앞엔 15일 비상사태가 해제된 뒤 사라졌던 바리케이드가 다시 쳐졌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던 수도 이슬라마바드는 인적 없는 '좀비의 도시'로 변했다. 시내 곳곳에는 전날 불탄 타이어와 차량 냄새가 매캐하게 풍기고 있다. 시민들은 바깥 출입을 삼가면서 TV와 신문 보도를 주시하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사흘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하면서 모든 학교와 상점.은행.주유소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조문의 뜻보다는 안전상의 우려가 더 큰 듯하다. 성난 부토 지지자들은 부토 암살이 알려진 직후 국영 상점과 은행의 유리를 깨고 현금인출기를 부수었다. 시 외곽에선 시위대가 "살인자 무샤라프"를 외치며 대통령의 초상화를 불태웠다.

◆번져 가는 소요 사태=소요 사태가 계속되면서 지금까지 20여 명이 숨졌다. 150여 대 이상의 자동차와 건물 수십 채가 불에 탔다. 아프가니스탄과의 변경 도시인 북서부 페샤와르에선 성난 군중이 대나무 막대로 차량을 닥치는 대로 부수다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과 충돌했다.

부토의 정치적 기반인 카라치와 신드주(州)는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성난 부토 지지자들은 미국 체인점이라며 KFC도 불태웠다. 상당수 카라치 주민은 전날 퇴근을 포기하고 사무실에서 밤을 지샜다. 택시와 기차.버스 등 모든 공공 교통 수단이 멈춰 섰다.

정부는 카라치 중심가에는 주민들을 자극할까 우려해 군인과 경찰들을 배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군중이 모이는 사다르 시장 등 외곽엔 경비가 삼엄하다. 여차하면 투입할 수 있도록 1만여 명이 넘는 병력을 카라치 주변에 배치해 놓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부토의 고향인 신드주 당국은 주 보안군에게 발포권을 부여했다. 신드주 내무장관은 "누구든 무고한 시민과 공공 재산에 해를 끼칠 경우 발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라치 주재 장석철 총영사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생필품조차 살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소요 사태가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비롯한 파키스탄 전역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로 진입하는 모든 도로에서는 시위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군경이 삼엄한 검문검색을 펴고 있다. 파키스탄 전역의 기차와 고속버스 운행도 중단됐다. 도시 간 항공 노선도 하루 두 편으로 제한됐다.

◆지지자 몰려든 장례식=지지자 수만 명이 부토의 고향인 신드주 가르히 쿠다 바크시에서 거행된 장례식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장례 행렬이 앞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관이 묻히는 순간 부토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눈물을 흘렸고 지지자들도 함께 울며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세 번 외쳤다. 주 파키스탄 한국대사관과 영사관도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파키스탄에 사는 한국 교민은 500명 정도 된다. 이들은 영사관과 한인회의 비상 연락을 받고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김승국 통신원, 서울=최지영 기자


◆중앙일보는 부토 암살로 급변하는 파키스탄 정국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교민 김승국(56.사진)씨를 이슬라마바드 통신원으로 위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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